[아산신문] 지난 21일부터 24일까지 박경귀 아산시장과 수행원 일행이 일본을 방문한 가운데, 일정 중 외교참사가 벌어졌다. 아산시가 기획했던 일본 하코네정과 상호업무협약(MOU) 체결이 불발된 것이다.
아산시 자치행정과가 작성한 일본 방문계획안에 따르면 '대표적 온천도시 하코네와 온천·관광분야 업무·정책교류 MOU 체결'이 방문 목적으로 적시돼 있다. 그리고 총 8개항으로 구성한 업무 정책교류 협약서도 마련해 가져갔다.
그러나 아산시가 24일 오전 배포한 "아산시, 한 발 더 가까워진 하코네와의 ‘온천 우정’"이란 제하의 보도자료엔 하코네시와 MOU를 맺었다는 내용은 없었다.
단지 "아산시와 일본 하코네정의 ‘온천 우정’이 한층 두터워질 전망이다. 박경귀 시장의 ‘교류협력 업무협약 체결’ 제안에 카츠마타 히로유키 하코네정장이 '체결하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라며 호의적인 답변을 내놓았기 때문“이라고만 적었다.
보도자료에 적힌 내용만 볼 때는 박 시장이 업무협약 체결을 제안하고 카츠마타 히로유키 하코네정장이 호의적으로 답변했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아산시가 마련한 협약서 8항은 "본 의향서는 한국어·일어·영어 각 2부씩 작성해 2024년 5월 23일 일본에서 서명하고, 모든 문서는 서명일로부터 동등한 효력을 갖는다"고 적혀 있다. 즉, 아산시가 애초에 박 시장의 하코네정 방문일인 23일에 맞춰 업무협약을 맺기로 의도했다는 말이다.
저간의 사정을 종합하면, 박 시장이 내놓은 업무협약 체결 제안에 하코네측이 호의적인 답변을 했다기 보다 아산시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고 보는 편이 사실에 부합한다.
법적 구속력 없는 MOU 조차 성사 못시킨 아산시
정상외교 수준에서 다른 나라와 조약 등을 맺으면 먼저 실무진들이 사전 조율하는 게 관례다. 지자체 수준의 외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자체 수준에선 방문국과 법적 구속력이 없는 상호업무협약 혹은 교류협약을 맺는데, 이때에도 실무진 선에서 사전 조율이 이뤄진다.
따라서 이번 하코네정과 MOU를 사전 기획했음에도 불발된 건, 사전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더구나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 없는 치적쌓기용이란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아산시 측은 현지 방문에서 돌발 변수가 생겼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하코네 방문 일정을 담당한 아산시 관광진흥과 맹희정 과장은 오늘(27일) 오전 기자와 만나 "사전 조율 과정에선 업무협약이 가능하다고 해서 추진했다. 하지만 하코네 측에서 의회 설명 등 행정절차를 처리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해명에도 문제는 남는다. 하코네는 행정구역상 '정(町)'으로 한국으로 치면 '동'에 해당한다. 그리고 2024년 5월 1일 기준 하코네정 인구는 10,970명에 불과하다.
인구 39만의 아산시를 대표해 인구 1만 규모의 하코네정을 찾은 박경귀 아산시장 일행이 사전 기획한 MOU를 맺지 못하고 돌아선 건, 이번 일본 방문이 급조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일으킨다.
지역정치권에선 즉각 외교참사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도의원 A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도의회에서 의정활동을 할 때, MOU를 추진하면 미리 실무진들이 사전 조율한다. 결국 박 시장의 일본행은 외유로 의심하기에 충분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민선 5·6기 아산시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복기왕 당선인(아산갑)은 "창피한 일"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기초 지자체장이 국외출장 갈 때 명분을 쌓고자 억지로 실효성 없는 MOU를 맺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MOU는 실무진간 사전 협의를 마친 후 지자체장이 서명만 하면 되는 일이다. 결국 하코네정과의 MOU 불발은 아무런 사전조율 없이 갔음을 우회적으로 입증한다"고 복 당선인은 지적했다.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아산시민연대 박민우 공동대표는 "하코네정과 MOU 불발은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다. 시의회가 감사권을 발동해 조사위를 꾸려 확인해야 한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박 시장은 재판 일정을 지연시키기 위해 국외출장을 갔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런 박 시장이 아무런 협상력도 갖추지 못한 채 시민 혈세로 국외출장을 갔으니, 결과적으로 재판지연을 위한 국외출장임을 박 시장 스스로 입증한 셈"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