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관리자 “아산에 소재지 두고자 행정절차 알아봤지만 아산시 묵살” 폭로
문화유산과 "관내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 소재지변경 신청 절차 밟았다"
[아산신문] 아산시가 국보 제334호 '기사계첩 및 함' 관외반출을 뒤늦게 인지하고 관련 예산을 불용처리해 문화재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아산시가 보관관리자의 뜻을 묵살하고 소재지변경을 압박한 정황이 취재결과 드러났다.
아산시는 '기사계첩 및 함' 관외반출 사실을 2023년 하반기에 인지하고, 9월부터 12월까지 소유주인 풍산 홍씨 종손에게 '국가지정문화재 소재지 변경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한편 아산시는 소재지변경 신고가 완료되기 전에 영인본 제작 예산 5천 만원을 불용처리했다.
이에 대해 아산시 문화유산과는 본질은 '재산권 문제'이며 "핵심 문화재가 관외 반출이 됐으니 (아산) 관내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 소재지변경 신청 절차를 밟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문화재를 보관·관리 중인 관리자는 이 같은 입장을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현재 이 문화재 소유주는 풍산 홍씨 정익공파이고 종손이 관리해왔다.
그런데 종손은 대리인을 통해 "아산시가 계속 연락해 왔다. 이에 소재지는 아산시로 두고 보관장소만 현재 살고 있는 서울로 변경하는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아산시는 수차례 전화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다"고 폭로했다.
대리인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녹취록을 제시했다. 해당 녹취록엔 2023년 9월부터 12월까지 아산시가 연락해 온 내용이 적혀 있다.
녹취록을 살펴보면 아산시는 지속적으로 소재지변경 신청서 제출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관리자는 소재지변경이 아닌 보관장소 변경신고 입장을 밝혔고, 아산시도 올해 2월 22일자 내부 공문에서 "원 소재지 보관시설 확보 후 보관장소 변경신고 계획"이라고 적었다.
그런데도 아산시는 소재지변경 신청서 제출을 압박했고, 끝내 관철시켰다. 더 큰 문제는 아산시가 소유주와 문화재를 아산으로 가져오는 방안을 논의하는 내용은 아예 없다는 점이다.
아산시는 2023년 9월부터 12월까지 지속적으로 소유주에게 연락해 소재지 변경 신청만 요구했다.
아산에 문화재 왔지만, 관할권 서울에 넘긴 아산시
문화재 보관장소 변경은 소재지를 그대로 둔 채 보관장소가 ‘임시로’ 바뀌는 것을 말하고, 소재지변경은 말 그대로 문화재를 둔 장소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소재지변경이 이뤄지면 문화재 관리 책임도 달라진다.
결과적으로 보관관리 중인 풍산 홍씨 종손은 아산시 관할에 두는 걸 염두에 두고 행정절차를 밟았는데, 아산시는 아예 문화재 관할권을 바꿔버린 셈이다.
'기사계첩 및 함'은 지난 2007년 소유자가 아산에서 서울로 이사하면서 소재지가 서울로 변경됐다. 그러다 2019년 소재지가 다시 아산으로 바뀌었고, 그래서 관할권도 서울에서 아산으로 넘어왔다. 이어 2020년 국보로 승격됐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문화재가 재차 서울로 반출됐고, 아산시는 행정상 절차를 들어 관할권을 서울시로 넘긴 것이다.
풍산 홍씨 문중은 문화유산과 행정에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문중 관계자는 오늘(7일) 오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아산시가 행정만 매끄럽게 했어도 이렇게 복잡한 행정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행히 '기사계첩 및 함'은 아산으로 돌아올 전망이다. 풍산 홍씨 문중은 "'기사계첩 및 함'은 아산시 문화재다. 그래서 문중이 아산시 행정을 바로잡으려 한다. 한편 이 문화재를 아산으로 되돌릴 수 있도록 보관관리자인 종손과 관련 절차를 조율하는 중"이라고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