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신문] 아산시 송악면 송남중학교(유재흥 교장)는 2023학년도 기준 전교생이 171명인 조그만 시골학교다.
이 학교는 2022년 3월부터 맞벌이·다자녀·취약계층 자녀 사교육비 경감과 방과 후 돌봄 공백을 해소하고자 ‘학교형 방과후 아카데미’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박경귀 아산시장이 지난 1월 교육경비를 일방 삭감하면서, 방과 후 아카데미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이러자 이 학교에 몸담고 있는 관계자, 학부모, 그리고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16일 오전 기자와 만나 그간 억눌러왔던 심경을 털어 놓았다.
익명을 요구한 이 학교 관계자 A 씨는 “시의회의 예산 승인을 받아 진행 중이었는데, (박 시장은) 협약당사자인 송남중과 일체의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 중단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A 씨는 먼저 방과 후 아카데미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A 씨의 설명은 이랬다.
“방과 후 아카데미는 청소년 돌봄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여성가족부가 시행하는 사업이다. 사업비는 국비와 시비가 50대 50 비율로 부담한다. 그런데 이 사업은 지자체 시설공간을 활용하는 유형과 학교 내 시설을 활용하는 유형으로 나뉜다. 아산의 경우 청소년문화센터와 청소년문화의집에서 방과 후 아카데미를 한다. 하지만 송악·둔포·인주 등에 주소지를 둔 학생들의 접근성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학교 형 방과 후 아카데미를 떠올리게 됐다. 다만 학교 내 별도 공간이 마련되어야 하는데다 학교장의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이런 이유로 시행하는 학교가 전국적으로도 세 곳에 불과하다. 하지만 학교장이 의지가 남달라 청소년문화의집, 아산시 교육청소년과 등에 제안했고, 결국 이 사업을 따냈다.”
방과 후 아카데미는 지난해 3월 아산시와 송남중이 업무협약을 맺고 시행에 들어갔다. 아산시 청소년재단이 위탁을 맡아 프로그램 운영요원 3명을 파견했다. 학교 측도 프로그램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놓는 등, 성공적 운영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인터뷰에 응한 ㄱ 학생은 “선생님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특히 선생님이 영어 시험을 준비하는 데 예상문제를 알려주셔서 성적 향상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방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은 전교생의 약 25%인 총 38명이었다. 학생들은 만족도가 높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ㄴ 학생은 “개인 사정상 프로그램에서 나간 친구들이 없지 않지만, 남은 친구들과 끝까지 할 수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교육경비는 국비로 해야 한다고? 방과 후 아카데미가 국비 사업!
박 시장은 수 차례 송남중 방과 후 아카데미 예산 삭감 이유를 밝혔었다. 먼저 박 시장은 지난 9일 오전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시비 8천3백 만 원이 지원되던 송남중학교 방과 후 아카데미 사업은 형평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중단했다”고 밝혔다.
앞서 2월 송악면 열린 간담회에선 “앞으로 교육 운영의 역할 재정립을 통한 재정부담 주체를 명확히 하고, 특정 학교나 지역에 편중되지 않게 지원하는 아산형 교육지원 사업을 추진해갈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시장은 이후에도 “교육경비는 국비로 하는 게 맞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중이다.
그러나 학교 관계자들과 학부모들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학교 관계자 A 씨는 “박 시장은 충남교육청이 보유한 교육안정화 기금을 거론하면서 교육경비는 국비로 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방과 후 아카데미는 국비 지원사업이다. 박 시장의 말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특정 지역에 편중했다’는 박 시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방과 후 아카데미에 참여한 학생 중 송악면에 주소지를 둔 아이들은 15명에 불과하다. 아산시 기타읍면에 사는 아이들 22명, 그리고 천안에서 다니는 학생 1명 등 오히려 타지에서 온 학생들이 더 많은 혜택을 누렸다”고 반박했다.
학부모 B 씨는 박 시장의 일방행정이 학교 소멸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을이 존재하기 위해선 학교가 있어야 하고, 학교가 있으려면 아이들이 와야 한다. 송악면은 문화재보존·생태보호구역이라 인구 소멸 지역이고 학령인구도 꾸준히 줄고 있다. 방과 후 아카데미는 아이들을 오게 하려고 시작한 사업인데, 박 시장은 이걸 쳐냈다. 이런 식이면 아이들은 학교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게 B 씨의 우려다.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은 아카데미 원상회복을 간절히 바랬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한다.
ㄱ 학생 : 워낙 공부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친구 관계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생님께서 잘 도와주셨어요. 선후배 그런 거 없이 다 같이 친하거든요. 그래서 이게 없으면 선후배랑도 멀어지고 성적도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다시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ㄴ 학생 : 원래 방과 후 선생님들이 다 좋으셨어요. 그래서 그대로 다시 생기게 해주세요.
ㄷ 학생 : 아산 안에만 있으면서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선생님들과 전주도 가고 잡월드도 가면서 새로운 직업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좋았어요. 아카데미 없어진다고 하니까 울었어요.
ㄹ 학생 : 다시 생긴다면 지원비 팍팍 써주시기 바랍니다. 그간 누렸던 혜택을 받기 위해서
ㅁ 학생 : 학교 다니면서 버스비가 두 배 들었는데. (방과 후 아카데미 하면서) 식사도 제공해주고 교통편까지 제공해 줘 편했어요. 그래서 다시 생겼으면 해요.
앞서 적었듯 박 시장은 형평성에 맞지 않아 예산을 삭감했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중이다. 지난 9일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어느 지점이 형평에 맞지 않았는지 묻는 질문엔 “지금 이 자리에서 밝히긴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박 시장의 일방행정이 나름의 꿈을 키워가던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결과를 불렀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와 관련, 학부모 B 씨는 “기자회견에서 박 시장은 작은 소통엔 실패했지만 전체 아산시민을 보는 큰 소통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건 작은 소통에 실패한 게 아니다. 아이들과 소통에 실패한 건 큰 소통에 실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