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신문] CA미디어그룹 아산신문은 우리 지역을 아름답게 빛낸 분들을 위해 자매지인 천안신문과 공동으로 천안과 아산지역에서 발굴한 인물의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져 한 권의 책으로 엮는 작업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이 일환으로 최근 2년간 정치, 사회, 교육, 농업, 문화, 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선정되신 분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본보에 연재하고자 한다.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더라도 낮은 곳에서 작은 일에 충실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분들이 우리 사회에서 존경 받을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겨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며 모방범죄가 아닌 모방선행을 하는 사회가 형성되길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아산시 신창면엔 외국인 거주자가 많다. 올해 7월 말 기준 신창면 총인구 27,199명 중 외국인 거주자는 7,998명으로 전체 인구의 29%에 이른다.
충남 208개 읍면동 중 외국인 거주자가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신창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외국인 중 상당수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중앙아시아 출신이다. 이들은 영어가 서툴러 행정 서비스를 필요로 해도, 이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신창면은 이 같은 상황을 감안, 지난 3월 우즈베키스탄 출신 압둘 보싯 씨(한국 이름 이민수)를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채용했다.
압둘 보싯 씨는 러시아어 통역 자격증과 한국어능력시험(TOPIK) 최고등급을 받았고, 아산경찰서 외사계 등 공공기관에서 통역한 경력이 있는 등 출중한 실력을 가졌다.
압둘 보싯 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건 2017년 9월 순천향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면서 부터다. 그러나 한국과의 인연은 ‘K 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에서 시작했다. 압둘 보싯 씨의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드라마 속 한국 생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가볍게 공부하자는 마음으로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 있는 한국어 교육원에서 3년간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이때 매년 두 번씩 한국 대학박람회가 열렸는데, 대학 관계자들이 유학생을 초청했습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마음에 들어 한국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K 콘텐츠와 인연, 이제 한국사람 되고파”
압둘 보싯 씨는 신창면 행정복지센터 공무원과 똑같이 일과를 보낸다. 이렇게 면 소재지 관공서에서 ‘풀타임’으로 외국인 통역관을 두는 건 전국에서 신창면이 유일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지난 7월부터 신창면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한 외국인 230명을 대상으로 민원 처리 만족도와 건의 사항을 조사한 결과 98%에 해당하는 226명이 ‘만족’했다고 답했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압둘 보싯 씨는 “뿌듯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았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먼저 제가 드린 작은 도움으로 민원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을 해결해 뿌듯합니다. 서류발급 업무 같은 일을 주로 하는데, 기억 나는 건 전월세신고제를 알린 일입니다.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월세 30만원, 전세보증금 6천 만원 이상 전월세계약을 하면 반드시 신고해야 합니다. 미신고시 과태료 처분을 받습니다.지난해 6월부터 시행됐는데 홍보가 잘 되지 않았는지, 이를 아는 외국인 거주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제도를 안내하고 도움을 드렸습니다.
또 하나, 제가 3월부터 근무를 시작했는데 5월까지 코로나19 생활지원금 지급 관련 업무를 주로 했습니다. 이런 행정 서비스가 있다는 것도 외국인 거주자들이 잘 몰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어 서류 작성, 자녀 학교 입학 문제에 대해서도 도움을 드렸습니다.”
압둘 보싯 씨는 ‘작은 도움’이라고 겸손해 했지만, 외국인 거주자의 처지에선 결코 작지 않다. 한 예로 8월 10일 기준 코로나19 생활지원금은 3,251건이 처리됐는데, 이중 792건은 압둘 보싯 씨가 소화해 냈다.
그러다보니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신창면이 아닌 지역에서도 도움을 요청하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신창면 측은 전했다.
압둘 보싯 씨는 한국에 애정이 많다. 그래서 오래 한국에 머무를 생각이다. 압둘 보싯 씨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외국인 거주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무엇보다 전 한국에서 살고 싶고, 여건이 되면 귀화할 생각입니다. 현재로선 여의치 않은데, 노력 많이 할 것입니다. 외국인이라서 차별을 당하는 일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따질 때 외국인을 도와주려는 한국인들이 더 많습니다.
한국 사람을 보면 지레 겁을 먹고 그래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많습니다. 전화만 하면 해결될 일도 겁을 내는 분들이 없지 않습니다. 아마 중앙아시아가 과거 공산주의의 지배를 받아서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좋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무엇보다 한국 법을 잘 알아서 잘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외국인들이 법을 잘 지켜주면 외국인 정책도 더 나아지지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