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신문] 미세먼지가 채 가시지 않은 11일 오전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선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경귀 아산시장의 첫 심리가 열렸다.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이 연루된 재판의 경우 검찰과 변호인 측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진다. 적어도 개인적으론 박 시장 재판에서도 검찰과 변호인측의 첨예한 법리공방이 펼쳐질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첫 심리는 의외로 싱거웠다. 검찰은 박 시장의 혐의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변호인측이 처음엔 혐의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맞서자, 검찰 측은 두 가지로 혐의점을 압축했다.
검찰측이 제시한 혐의점은 실로 놀랍고 충격적이다.
잠시 시계를 6.1지방선거가 한창이던 지난해 5월로 되돌려보자. 당시는 선거 막바지였고, 그래서 각 캠프마다 선거전이 치열했다.
이때 박 시장(당시 국민의힘 후보)은 상대였던 더불어민주당 오세현 후보(당시 시장)를 향해 ‘셀프 개발 추진 아산판 대장동 의혹’ ‘원룸건물 허위매각 의혹’ 등을 제기했다.
검찰이 허위사실유포로 본 건, 박 시장 쪽이 2022년 5월 25일자로 낸 “오세현 후보 LH사태 때 원룸건물 허위 매각 의혹도 짙어, 빗발치는 부동산 비리 의혹...이래도 네거티브냐”란 제하의 보도자료다.
해당 보도자료의 주요 내용을 아래 발췌한다.
“오 후보는 시장으로 취임한 2018년도 7월 직후인 8월 21일 아산 온천동 소재 다세대주택 원룸 건물(아산시 온천동 131-142 1동)을 매입한 바 있다. 이후 2021년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사전투기 의혹으로 촉발된 일명 LH 사태 때 부동산 투기 의혹이 공직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자 오 후보가 해당 부동산을 허위 매각하고 재산을 은닉한 의혹이 짙다.”
“오 후보가 2021년도 6월 1일 윤모씨에게 해당 부동산을 매매한 이후 6월 17일 소유권 이전 등기를 했는데 같은 날 해당 부동산이 신탁사에 관리 신탁됐다.”
“소유권이 이전된 날 관리신탁이 되었다는 점, 매입한 등기인이 오 후보의 부인과 성이 같은 윤모씨라는 점 등을 미뤄 봤을 때 시민의 입장에서 허위 매각 의혹을 갖기에 충분하다.”
이에 대해 검찰은 박 시장이 문제 삼은 부동산이 담보신탁 부동산임에도 관리신탁 됐다고 명시한 점이 허위라고 보았다.
같은 성씨니까 친인척으로 엮었나?
진짜 문제되는 대목은 검찰이 제기한 두 번째 혐의다. 박 시장은 해당 부동산 매입자가 오 후보의 부인과 성이 같다며 허위매각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검찰은 “박 시장이 매입자 윤 모 씨가 오 전 시장 부인인 윤 씨와 성이 같을 뿐 몇 달간 조사해도 관계성이 나오지 않았다는 취지의 내용을 모두 전해 받았음에도 어떠한 추가조사 없이 마치 같은 윤 씨라는 점만 부각해 마치 친인척 관계에 있는 이에게 매수한 것처럼 해석되도록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적시했다.
참으로 놀랍고 어처구니없다. 만약 검찰 측 혐의가 판결을 통해 사실로 인정받을 경우, 박 시장은 부동산 매입자와 오 전 시장 부인이 성씨만 같을 뿐 아무 관련이 없다는 점을 인지했음에도, 마치 관련이라도 있는 것처럼 부풀렸던 것이다. 즉, 허위임을 알고서도 흑색선전을 했다는 말이다.
재판 분위기와 박 시장이 선거 당시 보였던 행태에 비추어보면 검찰이 제기한 혐의가 사실에 부합하다는 판단이다.
지난해 5월 즈음 박 시장은 아산시내 곳곳에 오 전 시장을 겨냥해 ‘오 후보 부인 땅 수십억 시세차익 안길 풍기지구 셀프개발 의혹 사죄하라’란 글귀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런데 현수막 글귀 중 ‘안길’과 ‘의혹’은 의도적으로 작게 만든 반면 ‘셀프개발’과 ‘시세차익’ 글귀는 선명하게 보이게 했다.
현수막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한, 마치 오 시장 부인이 남편의 개발사업으로 시세차익을 챙긴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했다. 실제 이 현수막을 본 한 시민은 “‘안길’과 ‘의혹’이란 문구가 있는 줄 잘 몰랐다”고 털어 놓았다.
이번에 검찰이 문제 삼은 지점도 박 시장이 부동산 매입자 윤 모 씨가 오 시장 배우자와 성씨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둘을 엮어 “시민의 입장” 운운하며 의혹을 제기한 대목이다.
검찰이 제기한 혐의에 대해 박 시장 측 변호인은 아무런 반박도 내놓지 않았고, 박 시장은 재판 후 취재진을 피해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박 시장의 행태는 검찰이 제기한 혐의가 강력하다는 걸 은연중에 시사한다.
공직선거법 제250조 2항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ㆍ방송ㆍ신문ㆍ통신ㆍ잡지ㆍ벽보ㆍ선전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후보자에게 불리하도록 후보자, 그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ㆍ비속이나 형제자매에 관해 허위 사실을 공표하거나 공표하게 한 자, 허위 사실을 게재한 선전문서를 배포할 목적으로 소지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재판결과 혐의가 인정될 경우 박 시장이 받을 최소 형량은 벌금 500만원이다. 현행법상 100만 원 이상 형 확정시 직 상실이기에 박 시장은 법원 판결결과 혐의가 인정되는 순간 ‘퇴출’이다.
현직 시장으로서 법원 문턱을 넘나들면 행정에 차질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박 시장 측 변호인은 심리에 앞서 기일 변경을 요청하더니 심리에선 시간을 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인 제1형사부(서전교 부장판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