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신문] 눈과 비가 오락가락 내리던 13일 오후 천안 중앙시장 일대는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중앙시장을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민주당 당직자와 취재진, 지지자들이 모여든 것이다. 경찰은 이 대표 방문 1시간 전부터 현장에 나와 교통을 통제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고, 지지자들은 연신 ‘이재명’을 외치며 그의 얼굴을 가까이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 대표는 한 치의 표정 변화 없이 지지자들과 시장 상인들에게 악수를 건넸고, 대선 유세를 방불케 하는 연설을 했다.
이 대표는 연설에서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을 강한 어조로 성토했다. 특히 정부·여당이 관철시키려 하는 법인세 감면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 대표의 말은 이랬다.
“지금 정부, 뭘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려워진 이유는, 경제가 침체되는 이유는, 소수는 행복하지만 다수가 불행해진 이유는 바로 불평등과 격차, 양극화 때문 아닙니까? (중략)
미국이 인플레이션 대처법 ‘IRA’라는 법을 만든 핵심적인 내용은 부자들의 최저 세율을 올려서 서민들의 경제를 지원하자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이러고 있는데 왜 대한민국 정부는 삼천억 이상씩 버는, 삼천억 이상씩의 영업이익의 세금만 깎아주겠다는 것입니까.”
정부·여당을 향한 비판의 정점은 ‘민주주의가 질식하고 있다’는 대목일 것이다. 이 대표 발언을 그대로 옮겨본다.
“여러분, 우리 사회에 아무도 모르게 공포감이 젖어들고 있습니다. 국가는 어머니처럼 포근해야 하고, 외부로부터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강한 아버지 같아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가 지금은 ‘혹시 나를 때리지 않을까’, ‘혹시 나를 꼬집지 않을까’, ‘혹시 나를 해코지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존재가 돼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질식해가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국민의 기본적인 삶이 모든 영역에서 보장되는 기본사회로 가야 한다. 산업사회를 넘어서 복지국가를 향해왔듯이 이제 복지국가를 넘어서 기본사회로 나아가야 한고 생각한다”는 소신도 밝혔다.
국회 얼어붙었는데, 제1야당 대표는 선거 행보?
최근 정치 전반은 실로 절망적이다. 국회에서 여·야는 법인세 감면을 두고 입장차가 첨예하고 이로 인해 새해 예산안은 표류하는 중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해임안과 10.29 이태원참사 국정조사를 두고도 여·야 온도차는 극명하다.
문제는 이 대표가 제1야당 대표라는 점이다. 현재 의석 169석인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를 멈춰 세울 힘이 있다.
여·야가 쟁점 현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치하는 만큼, 이 대표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했다. 즉, 원내에서 정치를 해야지 선거철도 아닌데 뜬금없이 선거철에나 해야 할 법한 행보를 보이는 건 경우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이 ‘윤핵관’ 등 측근만 챙기고 야당을 외면하는 행태를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라도 정치를 포기해선 안 된다.
선배 정치인인 고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시절 단식 등 장외투쟁을 했지만, 이는 원내에서 모든 정치력이 소진됐을 때 꺼내든 최후의 카드였음을 이 대표는 기억해야 한다.
이 대표의 방문이 썩 달갑지 않았던 이유는 또 있다. 천안 등 충청권 행보에 나섰지만 이 대표의 연설에서 지역현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한편 검찰 수사망은 이 대표를 향해 점점 좁혀 들어오고 있다. 현장에 운집한 이 대표 지지자들도 “검찰이 이 대표를 죽이려 한다”며 날을 세웠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둔다. 검찰의 이 대표 수사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한때 인권변호사를 자처했던 법조인으로서 검찰 수사에 법적으로 방어하는 게 우선이다.
게다가 이 대표가 방문지로 택한 천안 등 충청권은 정치 여론의 풍향계 구실을 해왔다. 이 대표의 행보가 검찰 수사를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의도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대목이다.
민주당 의원도 이 같은 의도를 숨기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다. 민주당 황운하 의원(대전 중구)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지금은 이재명 대표를 도와주어야 할 때입니다. 검찰의 부당한 공격에 일치단결하여 이를 방어해야 할 때입니다. 검찰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바는 이재명 죽이기 보다는 민주당의 분열입니다. 그 길만이 30%의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힘이 다음 총선에서 다수당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현 상황이 ‘민주주의 질식’을 우려할 만큼 심각했다면, 이 대표는 제1야당 대표로서 원내에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게 순서였다.
그러나 이 대표는 현 시점에서는 물론 지난 8월 대표 취임 이후 원내에서 좀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처지다. 게다가 강성 지지층의 ‘팬덤’에 기대려 한다는 우려 섞인 시선은 계속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민주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최근 현안인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고작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을 담당 소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했을 뿐, 이렇다 할 정책 대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저간의 사정을 감안해 볼 때, 이 대표의 행보엔 물음표가 찍힐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 대표는 ‘팬덤’에 기대려는 행태를 버려야 한다. 이번과 같은 지역순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덧붙이는 글]
이재명 대표가 중앙시장을 방문했을 때 취재진과 지지자, 유투버 등이 뒤엉키며 위험천만한 상황이 펼쳐졌다. 이에 대해 민주당 충남도당 관계자는 14일 오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했고, 관련 논의가 오갔다.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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