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신문] 평화의 소녀상이 전 세계와 우리나라 전국 곳곳(충남지역-천안, 아산, 서산, 당진, 논산, 홍성)에 자리 잡고 앉았다.
8월 14일은 세계 위안부 날이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로서 처음으로 피해사실을 증언한 날을 기려 정해졌다.
역사상 유래 없는 20만 명 어린여성 인권이 유린당했다. 세계의 양심이 공분하고 인류의 공의가 애통하며 절규했다. 그중 70% 14만 명이 우리 대한의 어린 딸들이다. 반세기만에 감추고 숨겨온 그 치욕의 역사가 재조명되었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비인도적인 책임을 외면하고 회피하는 작태가 노골적이고 더욱이 우리사회 무관심에 더 짙어진 ‘역사의 그늘’이 언제쯤이나 ‘고통’을 씻어낼 것인지 가슴이 저린다. 위안부 실태가 계속 밝혀지고 있다. 아직도 계속되는 역사의 통곡소리에 민족의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으로 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
국제법상 군위안부 문제는 “노예적 혹사 및 그 밖의 비인도적 행위”로서 “인도에 반하는 죄(Crime Against Humanity)”이기 때문에 국제법산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국제법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양국 간의 국제법상 권리와 의무가 일단락되었다며 정부차원의 보상을 회피하고 있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곱씹어보면 ‘합의’라는 용어 자체가 마뜩찮다. 이건 나라와 나라 사이에 종잇장 하나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쌈짓돈 몇 푼으로 갈음할 일도 아니다. 명색이 ‘보상’이 아니라 ‘배상’을 하라는 것이다.
문명이 개화했다는 20세기에 스스로 문명국을 자처한 일본제국이 조선에게 가한, 또 일본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의 화신인 일본군이 조선의 꽃다운 소녀들에게 가한 야만스러운 범죄에 대해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처음으로 자신이 당했던 일을 세상에 알렸을 때, 남들이 알세라 전전긍긍 가슴속 깊이 숨겨온 상처를 칠순이 다 돼 만천하에 드러내기로 마음먹었을 때 목적은 단 하나였다. 오로지 사과였다.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진심으로 비는 것이었다.
그게 과한 요구였을까. 하기야 강제징용의 현장이었던 군함도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데 성공한 일본이 아니던가, 위안부 합의에다 감히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단서까지 붙였을 정도이니 그 뻔뻔함을 더 말해무엇할까.
위안부라는 용어 자체가 대단히 모욕스럽지만 언어는 다만 약속에 불과하므로 그냥 넘어간다 치자. 그러나 위안부 합의만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피해 할머니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짓에 가담한 사람들을 역사도 도저히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한일 외교장관 간의 위안부문제 합의에는 “일본군 관여 인정”, “일본 정부의 책임인정”, “일본 정부 예산을 통한 보상”이 포함되어 있어 과거보다는 많이 진전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사과하는 자세와 성의 정도가 문제일 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사실상 접은 것은 문제이다.
또 국제법적 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일본국가의 배상이 아닌 보상도 문제이다. 국제외교의 일본 위상이 위협되고 안전보장이사회에 진입하는데 방해되므로 서둘러 합의한 것이라 본다.
일본군 위안소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32년 이후 일본 육군성은 일제패망 45년까지 군위안소 설치와 운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동서고금을 통해 유래가 없었던 잔악한 인권을 유린한 만행은 반세기 전 일본군에 의해 자행되었다. 지금까지도 피해자들의 통곡이 그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사건은 전쟁과 제국주의, 여성억압 문제가 한데 응집된 반역사 비 인륜 그 자체다.
내무성 등 일본 정부기관과 조선 대만총독부는 위안부 모집을 위해 육군성과 협력 체제를 갖추었다. 그에 따라 일본 본토를 비롯해 조선과 중국,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평양 일대 섬까지 일본군이 주둔한 곳에는 어김없이 위안소가 들어섰다. 강제로 동원된 위안부 수는 약 20만 명 이중 70% 이상을 식민지인 조선 여성으로 채웠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위안부 범죄 역사에 대한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와 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매주 수요일 집회는 26주년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 이제는 부산, 광주, 천안 등 전국 14개 도시에서도 동시에 집회가 열리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해외 11개국 25개 도시에서도 소녀상이 설치됐고 집회도 세계적으로 번져가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보호하는 시설이 경기도 광주에 나눔의 집이 있다. 나눔의 집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숨기고 싶은 안타까운 비참한 사연들이 귀향이라는 영화로 개봉되었다.
조정래 감독, 임성철 PD, 노영완 제작실장이 선남들이다. 소녀야 아팠지 이제 집으로 가자. 지난해 7월에 미 의회에서 티저영상 시사회가 열렸고 뉴욕타임즈가 전면에 보도했다. 비공식적인 위안부 피해자 규모는 약 2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그들 계산대로라면 극장에서든 유튜브에서든 20만 번 상영되어야 한다.
이렇게 귀향은 위안부 피해자 한명 한명을 고향으로 데려오는 영화이다. 소녀야 아팠지 이제 집으로 가자 전 세계가 일본군 위안부들을 기리고 있다.
우리는 용서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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