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신문] 아산시 등 각 지방자치단체는 시민들에게 직접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민간 사업자를 정해 공공서비스 업무를 위탁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지역사회가 다양화하면서 공공서비스 수요는 폭증하는 데 비해 기존 시 행정조직은 제때 대응하지 못해서다. 이에 지자체는 민간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보조사업자를 지정하고, 보조금을 지급해 활동을 지원한다.
이에 지난 1984년 시·도 지자체가 함께 출연해 설립한 연구기관인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지방정부 보조금을 "지방자치단체가 경제적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고 민간부문에 지출하는 경비"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지자체가 지역 내 사회적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공공서비스를 공급함에 있어 민간 역량을 활용하고 효율적 서비스 공급을 도모하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정의했다.
앞서 기자는 박경귀 아산시장이 지난 1월 29일 오전 열렸던 '2월 월간업무 및 대외기간 평가 대응계획 보고' 회의에서 4월 총선을 언급하면서 시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기관 단체가 정치활동을 해선 안되며, 이를 어길 경우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거나 집행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관련기사 : [단독]박경귀 시장 "보조기관 정치활동 하면 보조금 지급 중단" 엄포, 기관·단체 반발)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먼저 시로부터 보조금을 지급 받으면 정치활동을 해선 안 된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떤 근거를 갖는 것인가? 더욱 심각한 건, 정치활동을 문제삼아 보조금 지급 중단을 공공연히 압박한 점이다.
앞서 적었듯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정의에 따르면 보조금은 '경제적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고 민간부문에 지출하는 경비'다.
비록 '경제적'이란 전제조건이 붙었지만, 무게중심은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대목에 쏠린다. 보조금을 준다는 이유로 정치적 반대급부를 요구한다면, 지자체엔 관변단체들로 넘쳐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박 시장 논리대로라면, 박 시장 소속 정당인 국민의힘과 노선을 같이하는 단체에게만 '정상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의도임을 드러내놓고 밝힌 셈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조윤선 전 정무수석 실형, 왜?
박 시장의 엄포는 형사처벌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 박근혜 정부 시절 당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은 2017년 2월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나 예술가를 정리한 문건(블랙리스트)을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이를 기초로 정부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배제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전 정무수석은 원심에서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2년을 선고 받았지만 대법원은 2020년 1월 파기환송을 선고했다. "문체부 산하기관에 각종 예술인 명단을 받거나 공모사업 심의 상황을 보고받은 것은 의무 없는 일을 시킨 것으로 단정할 수 없어 심리를 더 해야 한다"는 게 파기환송 취지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두 사람이 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 소속 직원들에게 반정부 문화예술을 정부 지원사업에 배제하도록 한 혐의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이에 지난 1월 서울고법은 파기환송심에서 이들에게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1년 2월을 선고했고, 이들이 재상고를 포기하면서 형은 확정됐다.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전 정무수석의 사례에 비추어 보면, 만약 박 시장이 정말로 보조기관의 정치활동을 문제 삼아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도록 지시할 경우 직권남용을 저지르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언론사에 지급되는 각종 시정 홍보비 역시 매체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시장 개인 쌈짓돈처럼 운영한다면 이 또한 사법적 영역에 가까워졌음이 점쳐진다.
이를 두고 익명을 요구한 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박 시장의 발언과 시정 운영은 분명 선을 넘었고, 법적으로도 문제 소지가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시장은 오늘(5일) 시청 상황실에서 열린 주간간부회의에서 "행정의 품격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무엇보다 행정의 품격을 높여야 하는 공직자는 누구일까? 박 시장 스스로를 뒤돌아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