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상 높이가 국력이라고?

2018-11-16 14:23 입력

[허성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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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칼럼] 아산시민과 진천 시민에 드리는 경의
[아산신문]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 88서울 올림픽에 이어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나라, 인구 5천만 이상 되는 국가 중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순위를 보면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에 이어 한국이 6위다. 영국 컨설팅업체 브랜드파이낸스가 2019년 10월에 발표한 국가브랜드 2019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브랜드 순위는 미국, 중국,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인도, 캐나다에 이어 9위다.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선박을 비롯한 첨단산업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 가수 등의 인기가 중국,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2018년 미국 음반 시장에서 60만3307장의 앨범을 팔아 에미넘에 이어 연간 음반 판매량 차트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지표가 말해 주듯이 대한민국의‘국격’(國格)이 엄청 높아졌다. 국격이 올라간다는 것은 나라의 평가 등급(級)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또한 그 만큼 우리가 지켜야할 일도 많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국격이 높아져 다른 나라 사람들로 부터 존중을 받을 자격과 그에 맞는 실력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많은 분야가 정상적이지 못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내 마음에 들면 합법이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악법이다'란 말이 있다. 국가의 최 상위법이 헌법이란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헌법위에 떼법이 있다고 한다. 떼법위에 촛불법도 있고 촛불법위에 국민정서법이 있다. 이 같은 잘못된 사회정서로 떼를 쓰면 국가적 프로젝트마저 멈추어 세울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가 국민 속에 뿌리내려 있다. 벌써 수년전의 일이지만 경부고속철 구간에 터널을 뚫으면 도롱뇽이 죽는다며, 연약한 생명인 도롱뇽을 살리자며 한 승려가 떼를 쓰자 공사가 2년 반이나 중단됐다. 대법원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터널은 완공되었지만 막대한 기회비용을 치러야 했다. 그 후 터널이 개통되어 10년 여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이곳 도롱뇽이 사라졌다는 소식은 없다. 법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공동체가 같이 지키자는 약속에 불과하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여기서 말하는 ‘떼법’도 마찬가지다. 집단의 힘에 의존해 민원을 해결하려는 사회현상을 빗댄 표현으로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여 종합하여 보면 법 적용을 무시하고 생떼를 쓰는 억지 주장이라고 적혀 있다.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불법 시위를 하는 행위를 ‘떼법’으로 정의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생떼를 쓰거나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시위 등의 단체행동을 통하여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 떼법이다. 떼법위에 국민정서법이 있다. 국민정서법 앞에서는 좌파 우파 할 것 없이 정치가 무기력할 뿐이다. 모두가 국격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 우한 거주 교민을 전세기로 데려왔다. 당연히 주권국가가 할 일이요, 국민이면 누구나 보호 받아야 마땅하다. 문제는 데려와서 어느 지역에 격리 수용할지에 대해서 격론이 벌어졌다. 아산과 진천의 공공시설에 격리 수용하겠다고 하자 이 지역 주민들이 경운기로 진입로를 막는 등 집단 반발까지 일어났다. 다행스럽게도 뜻 있는 아산시민들이 우리 지역에 오셨으니 편히 쉬고 가란 현수막을 내걸었다. 정말 성숙한 시민의식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주민들의 반발에 대하여 주민들만 나무랄 수도 없다. 최초 발표에서는 수용지를 천안으로 검토하였다. 그러나 천안 시민들이 집단으로 들고일어나자 다른 장소를 물색하였던 아마추어 행정이나 정책 결정도 한몫을 하였기 때문이다. 역지사지 입장에서 본다면 수용지 주민들의 분노는 당연하다. 이 분들을 수용하여야할 없어서는 안 될 국가적 시설물이라면 냉철한 사고를 한 후에 주민을 설득하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더구나 한번 결정된 정책이라면 절대 바꾸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정책의 일관성이다. 처음 정책 결정할 때 신중하게 일을 처리해야 되는 이유다. 주민들의 요구나 일부 단체의 떼쓰기에 밀려 바꾸는 선례를 남긴다면 연속적인 부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 일관성이 결여된 정책을 시행하다보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가 없다. 더욱이 떼쓰기에 밀려 기존 결정을 번복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감수해야 한다. 국민이나 정부는 물론이고 우한에서 귀국하는 교민들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성숙한 진천시민과 아산시민들에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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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칼럼] 바보들아, 답은 정명(正名)에 있다
[아산신문] 공자의 제자 자로가 선생님인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위나라로 가시는데 만일 위나라의 왕이 선생님을 맞이하여 정치를 맡긴다면, 무엇부터 하시렵니까? 그의 제자의 물음에 공자는 하나도 서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필야정명(必也正名) "반드시 먼저 명을 바로 잡겠다." 정명은 공자의 정치사상의 중요한 원리로 말 그대로 이름을 바로 잡고 명분을 분명히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름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는 이름이 있으면 그 이름에 해당하는 직무를 실천해야 된다는 뜻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면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실천과 직분을 다하는 것이 정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유명무실한 국회, 유명무실한 헌법, 유명무실한 대학, 유명무실한 장관, 유명무실한 공무원, 유명무실한 정치, 유명무실한 교육, 유명무실한 경제정책뿐이라는 한탄이 여기저기선 나오고 있다. 실제로 유명무실한 기관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의 기강이 흐려지고 국가의 경쟁력은 떨어진다. 엊그제 미국 하버드대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로버트 배로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정책을 두고 소득주도성장(income-led growth)이 아니라 소득 주도 빈곤(income-led poverty)이라고 비판하였다. 연일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는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한마디로 거창한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이 부여한 직분에 걸 맞는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의 일을 똑똑하게 하고, 장관은 장관의 직분에 걸 맞는 일을 제대로 하면 된다. 그것이 다름 아닌 정명이다. 성균관대 이기동 교수는 신동아에 <세상은 욕심 많은 암흑시대…“공자의 정명(正名)으로 횃불 밝히자”>란 글을 2012년 6월에 기고하였다. 그 글의 첫 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일전에 어떤 분이 e메일을 보내왔다. ‘개판 5분 전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이었다. 그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고급공무원, 국회의원, 판사, 검사, 3권 분립, 요인들은 말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을 한다고 손들고 서약만 했지, 사리사욕과 권력 쟁탈에 눈멀고 귀먹어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한심한 나라. 학생들은 일진회인가 뭔가 하면서 조폭 흉내를 내고, 대기업들은 영세기업을 뜯어먹으면서 살고 있는 나라. 사기꾼들은 해외에서 활보하면서 여유만만, 말단 공무원부터 판사들까지 대통령을 조롱하고, 지역의 무식한 잡배들은 검경(檢警)의 앞잡이가 되고, 수십억 원대의 체납자들은 ‘내 배 째라’해도 속수무책이고, 나라를 말아먹는 집단들은 큰소리 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산화한 사람은 죄인이 되고. 국회의원들은 그만둬도 월 100만 원 넘게 받아 처먹고, 감방 갔다 나온 놈들은 국회의원 하겠다고 기자회견하고,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하는 나라. 한글도 제대로 못 쓰는 사람이 언론인 행세하는 나라. 장관은 20일만 해도 죽을 때까지 연금 타먹는 나라.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괴상한 나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세계에 알려졌던 나라가 부모를 죽이고 노인을 제집 강아지만큼도 못한 것으로 취급하며, 도둑과 사기꾼이 구더기같이 만연한 나라. 어린이 보호소에 보내는 3~4세 아이의 부모에게는 1개월에 40만 원 주면서 6·25 참전 국가유공자란 80세 늙은이에게는 12만 원 주며 생색내는 썩어빠진 국가, 대한민국이란 나라. 우리나라.”라는 글을 소개했는데 아직도 별로 바뀌어진 것이 없다. 이 글이 맞아서라기보다 그만큼 우리 시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의미에서 이글을 요약하여 인용하였을 것이다. 위아래 할 것 없이 썩고 문드러진 이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되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정의의 원리에 입각한 이상 국가를 구상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했던 이상국가란 어떤 국가 인가? 정의가 구현된 국가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제게 부여된 직분을 다하고 제각기 제자리를 지키고 욕심 때문에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요즘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청와대의 하명수사나 조국 사태도 따지고 보면 욕심 때문에 제 직분을 벗어나 남의 역영을 침범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사회에 만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장관 , 국회의원, 교수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품위와 인격을 가지고 제일을 하면 문제가 스스로 해결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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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상 높이가 국력이라고?
[아산신문] 최근 인도에서는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동상을 세웠다. 타임(TIME)지 최근호에 따르면, 인도의 독립을 이끈 지도자 사르달 발라파이 파텔의 탄생 143주년이었던 10월 31일 597피트(182m) 높이로 세운 그의 동상이 베일을 벗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위로 환산한 182m 높이가 어느 정도냐 하면 업무용 빌딩으로 40층이 훨씬 넘고, 아파트로는 50여 층 되는 규모다. 타임은 미국 자유의 여신상이 151피트(42m)인데 비해 무려 4배나 더 높은 규모라고 보도했다. 인도 서부지역 구자라트주 케바디야 영지에 가면 지평선을 배경으로 웅장한 파텔 동상을 볼 수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인도의 국력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해답으로 이 동상을 세웠다고 하는데, 건립비가 만만치 않다. 33개월 동안 4억달러(4500억원)를 쏟아부었다. 대부분 국비로 충당했지만 일부는 인터넷 모금을 통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인도의 국부 중 한 명인 파텔은 모디처럼 출신성분이 좋지 못했다. 1947년 인도가 분리되자 파텔은 인도 아대륙의 지역 지도자들로 똘똘 뭉친 거대한 집단을 설득해 파키스탄대신 인도로 들어오게 했다. 모디 총리는 2010년 구자라트 주의 총리가 되면서 동상 건립계획을 발표했고, 2014년 인도 총리로 등극하면서 파텔의 탄신일을 국가통일의 날로 선포했다. 2019년 예정된 총선거보다 앞서 동상의 베일을 벗겼는데 그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힌두교 우익 유권자들의 환심을 미리 사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인도의 독립영웅 파텔은 지금 모디가 속한 정당 BJP(바라티야 자나타, 인도인민당)와 최대 라이벌로서 중도파로 분류되는 인도국민회의 지도자였다. 정치 비평가들은 1980년 창당된 BJP가 파텔의 정치적 업적을 높이 평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파텔의 동상건립이 바로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한 노골적인 시도로 보인다는 것이다.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수체타 마하잔 교수는 “국가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주장하는 정당으로서 그들은 그것을 환기할 수 있는 과거가 없다”고 말했다. 모디 총리는 중국의 주물공장에서 주조된 구리로 동상의 외관 작업을 하는 중국 근로자들의 사진이 유포되자 궁지에 몰렸다. “메이크 인 인디아”와 함께 인도의 주도권을 많이 강조하는 모디 총리에게는 앞으로 발목을 잡는 복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 라울 간디 인도국민회의 대표는 지난 9월 반대집회에서 “파텔 동상의 뒤에 '메이드 인 차이나'가 새겨져 인도의 수치”라고 비난했다. 한편 뭄바이 해안에는 이보다 더 높고 큰 동상이 세워질 계획이다. 2021년 완성될 예정으로 무슬림 지도자들과 싸운 힌두교 전사 차트라파티 쉬바지 왕의 동상을 건립한다. 이를 추진하고 있는 힌두교는 모디 총리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우리가 이 동상과 함께 세계로 보낼 메시지를 주목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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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열 칼럼] 친구 사랑이 최고 사랑
[아산신문] 친구를 위하여 마음과 몸을 바치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다. 친구 사랑이 가장 높은 사랑이다. 인격적이라 시기 질투하고 하는 것은 다 넘어서서 사랑하는 것이니까, 나를 낮추고 그를 높이는 것이니까, 정신적인 엄청난 사랑이 거기 들어 있는 거다. 모든 사람이 내게 친구 되어 주기만을 바라고 기다리면 죽을 때까지 친구 못 만난다.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이런 애기가 있다. 참 눈물겹도록 귀한 이야기이다. 어떤 친구가 소화가 안 된다 이상하게 소화가 안 되기 시작하면서 점점 입맛도 없고 괴로워서 몸은 자꾸 마르고 그래 자기 친구를 불러가지고 내가 요새 소화도 잘 안 되고 위가 좀 아프다고, 속히 아프다고 하니까 아, 그럼 병원에 가서 진찰을 좀 해보지 그래 한다. 그러나 병원에 안 간다. 이 사람이 소심한 사람이라 병원에 갔다가는 ‘위암’이라는 선언을 받을 것 같거든, 크게 고장난 것 같거든, 큰 병이 걸린 것 같아요, 그리고 위장병 조사할 때에는 내시경 검사다 뭐다 하면서 복잡하게 한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그 친구가 몇 번 권면했는데도 도무지 병원에 안 간다, 얼마 후에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네가 소화 안 된다고 하니 나도 소화가 안 돼네, 나도 위장이 아픈 거 같애, 나하고 병원에 같이 가자 그래 둘이 같이 가서 진찰을 받는다. 받아보니 견딜만하더란다. 두 사람이 같이 진찰을 받고나자 의사가 말하기를 “둘 다 병이 없다. 건강해요.”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병원을 나올 때에 먼저 위장병 걸렸던 사람이 생각했다. ‘아하, 이 친구는 위장이 아프지 않은데 나를 위해 짐짓 아프다 하고 함께 와서 진찰을 받았구나, 참으로 좋은 친구로다.’ 참으로 좋은 친구는 남을 비판하지 않는다. 의지가 있느니 없느니…… 그런 설교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를 낮추어서 그와 나를 동격시해 버리는 법이다. 거기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느 신문에 나온 얘기이다. 아름다운 우정이 기록되어 있다. 경민이라고 하는 18세 소녀 가장이 있다. 이 소녀 가장이 아주 애써서 혼자 고학을 해가지고 학원을 다녀서 대입검정고시에 합격을 한다. 합격하자마자 합격증을 가지고 제 친구 지현이를 찾아가 자랑한다. 둘이는 얼싸안고 기뻐하게 된다. 사연은 이렇다. 경민이는 6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또 당뇨병으로 심하게 고생을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을 못한다. 상업학교에 들어갔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편의점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많은 고생을 하면서 어머니 병 수발을 들고 또 어린 동생들을 가르치곤 한다. 그럴 때에 지현이라고 하는 친구가 찾아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봉투 하나를 던져주고 간다. 봉투를 뜯어보니 이렇게 쓴 편지가 나온다. ‘언제나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지칠 줄 모르던 네가 요즘 구름에 싸여 빛을 보지 못하는구나, 힘들어도 이겨낼 줄로 믿는다. 이 작은 것은 학원비로 보태 써라, 나는 이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몇 달 동안 저금을 했단다’-여기서 용기를 얻고 그 어려운 가운데서 또 저녁마다 공부를 한다. 그래서 대학검정고시에 합격을 한 거다. 그리고나서 지현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내용이 이렇다. ‘지현아, 고마워! 모든 것은 네 덕분이야. 꼭 대학에 입학을 하고 앞으로 나도 역시 꼭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힘쓸께.’ 꼭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힘쓸께-진정한 친구를 가졌으면 다시 나도 남에게 또 좋은 친구가 되어야 되는 것이다. 친구를 위하여 마음과 몸을 다 바치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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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칼럼] 동양대 최성해 총장은 참스승 참어른이다
[아산신문] 인간끼리 경쟁하며 사는 세상에서는 정직하게만 세상을 살 수가 없다. 때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여야 될 때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루에 대략 몇 번이나 거짓말을 할까? 물론 성직자를 비롯한 고매한 선승들은 하루에 한 번도 거짓말을 안 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본의 아닌 거짓말을 일상적으로 반복하며 산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는 20명의 몸에 소형 마이크를 부착해 이들이 하루에 몇 번이나 거짓말을 하는지 흥미로운 조사를 한 바 있다. 이 통계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은 하루에 약 200번, 그러니까 대략 8분에 한 번꼴로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물론 이 조사에서의 한 거짓말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다소 의례적인 말까지 포함한 숫자이다. 며칠 전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있었다. 여와 야로 갈라진 청문회에서 서로 자기편이 맞고 상대편이 틀렸다고 주장하였다. 그 국회의원들의 말은 한쪽은 맞고, 다른 한쪽은 틀린다. 이들의 말에 대한 정확도나 진실여부를 가려보면 거짓말은 그들이 한 말의 거의 반이나 된다는 가정을 할 수가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얼굴을 두껍게 가려야 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 "후안"이다. 또한 상대편에게 나의 마음을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나의 마음을 검게 하는 "흑심"이라는 말도 있다. 이 둘을 합하여 우리는 "후안흑심"(厚顔黑心)이라고 한다. 즉 두꺼운 얼굴로 방패를 삼아 상대와 대적 하여야 한다. 또한 검은 마음으로 창을 삼아 어려운 난세를 살아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이번 청문회를 보면서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속임수에 능한지를 많은 국민들이 실감할 수 있었다. 영주의 동양대학교의 최성해 총장이 교육자의 양심으로 진실을 말한다고 하여도 온갖 궤변(詭辯)으로 이 말의 진실을 왜곡시키려고 하였다. 더욱이 논리도 맞지 않고 부도덕한 사고로 진실을 가리겠다고 목청을 높이는가 하면 최성해 총장도 모르는 상장을 들고나와 총장의 기억마저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것이 곡학아세(曲學阿世)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분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다. 이들 국회의원을 보고 있노라니 후안흑심을 눈앞에서 보는 느낌이었다. 중국인은 "가능한 한 더 많이 철면피가 되고, 더 철저하게 흑심을 지녀야 생존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고 정직하게 산다면 영웅도 될 수 없고, 천하도 호령할 수 없다고 하였다. '완벽한 성공'을 위해서는 "낯짝이 두껍고 속이 시커멓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아래와 같은 그 3단계를 보는 것 같았다. 제1단계 : 철면피를 성벽과 같이 굳건하게 하고 흑심을 석탄과 같이하라. 제2단계 : 두꺼우면서도 강하게 하고 검으면서도 빛나게 하라. 제3단계 :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이하고 검으면서도 색채가 없게 하라. 이런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진솔한 말이나 진실을 말하는 것은 기름통을 지고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동양대학교 최성해 총장은 양심을 팔지 않았다. 지성인의 지조를 지켰다.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사는 것인지를 전국민들에게 보여 주었다. 이 증언을 보면서 동양대학교 총장은 맷집이 좋고 지략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언론인도 있었다. 나는 이분을 보면서 아무리 거짓말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어지러운 세상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지성을 보는 것 같았다. 마치 조선 중기의 문인 <신흠 선생의 불매향(不賣香)>이란 다음과 같은 시를 읽고 있는 기분이었다.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오동나무는 천년을 살아도 제 곡조를 항상 간직하고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을 추위에 떨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디 모습 그대로 이고 柳經百別又新枝(류경백별우신지) 버드나무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 이 시에서 보는 오동의 명성은 소리의 울림이 뛰어난 때문이며, 매화는 평생을 춥게 살지언정 제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매월 이지러져 안보이지만 본질은 그대로다. 버드나무는 가지가 꺾여도 항상 새가지가 돋아난다. 신흠 선생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자신의 본성(本性)을 지키며 항상 꺾이지 않는 기개와 끈기를 가진 진정한 선비정신을 강조하였다. 양반의 명예와 군자의 품격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귀영화를 쫓느라 절개와 자존심을 포기하면 타락한 선비가 아닌 그냥 천민(賤民)일 뿐이다. 애초부터 포기할 자존심이 없었다면 그것은 짐승임이 틀림없다. 신흠 선생은 불매향이란 시를 통하여 선비의 자질과 지조를 강조했다. 동양대학교 최성해 총장은 조국(54)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57)로부터 자신에게 총장 표창장 발급을 “위임했다는 얘기를 해달라”는 청탁을 받았으나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리고 진실과 양심을 지키고, 바르게 사는 법을 보여 주었다. 참으로 드물게 보는 참스승, 참어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