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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예산권 포기’ 압박 김희영 의장, 집행부와 전면전 선언했나?
[시론] ‘예산권 포기’ 압박 김희영 의장, 집행부와 전면전 선언했나?
아산시의회 김희영 의장이 30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해 박경귀 아산시장을 향해 예산편성권 포기를 압박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아산신문] 아산시의회 김희영 의장이 어제(30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해 폭탄선언을 했다. 박경귀 아산시장을 직접 겨냥해 2024년 예산안 편성권 포기를 선언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10월에서 11월로 넘어가는 현 시점은 중앙·지방 할 것 없이 예산안 편성을 두고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 일쑤다. 하지만 이렇게 지자체장을 향해 시의회 의장이 예산편성권 포기를 공개 압박한 사례는 그야말로 초유의 일이다. 당장 국민의힘은 반발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시의원 일동은 31일 오후 입장문을 내고 "의장으로서 의원들과의 단 한 번의 소통과 협의도 없이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하여 국민의힘 의원 일동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임을 밝혀 둔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김희영 의장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2024년 6월 말이면 의장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김 의장은 내년도 예산에 대한 의회의 의결권을 의결할 의장으로서의 자격이 없으니 내년도 예산심사의 권한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논란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예산편성권은 지자체장을 정점으로 한 집행부(혹은 행정부) 고유권한이다. 반면 기초단위 의회는 예산심의·의결권을 갖는다. 이건 풀뿌리 민주주의 시스템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박 시장을 겨냥한 김 의장의 예산편성권 포기 압박은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개입이고, 삼권분립을 거스르는 중대 사안이다. 개인적으로 김 의장이 기자회견을 예고했을 때 다소 의아했다. 김 의장이 기자회견을 예고한 시점은 지난 27일로, '박경귀 시장의 2024년 본예산 편성 관련'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혹시 박 시장 등 집행부가 불합리한 예산을 편성한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고, 이에 본 기자회견 때 '예산안이 시의회에 올라왔나?'고 물었다. 김 의장의 답변은 '담당 실과에서 협의중'이었다. 한편으론 안도했지만,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와중에 '예산편성권 포기'를 압박하는 건 너무 나아간 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더구나 앞서 적었듯, 김 의장의 공개 압박은 집행부 고유권한 침해로 보일 여지는 충분했고 실제 취재진들은 이 점에 질문을 집중했다. 그러나, 적어도 박 시장의 처지와 최근 보이는 행태를 감안해 볼 때 크게 이치에 어긋나지는 않는다는 판단이다. 박경귀 아산시장은 거취가 불투명함에도 실효성 없는 축제와 잦은 외유로 빈축을 사고 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자주 언급하지만 박 시장은 허위사실 유포로 기소돼 1·2심에서 잇달아 1500만원 벌금형을 받은 처지다. 박 시장은 원심·항소심 판결 모두를 수용할 수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은 현재 법리 검토 중이다. 아직 법원 판단이 최종 확정되지 않았지만 하급심 판단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게 법조인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단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재판부가 박 시장의 허위사실 유포 혐의를 굉장히 심각하게 여기고 있음을 감지한다. 여기에 박 시장이 재판 과정에서 보인 행태에 대해서도 시선이 곱지 않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 같은 맥락을 감안해 볼 때, 박 시장은 시장직 상실을 피하기 어려운 처지다. 그런데도 박 시장은 최근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로 일관하는 중이다. 지난 몇 달 사이 아산에선 축제가 이어졌다. 그런데 '제2회 100인 100색전'·'제1회 재즈 페스티벌'·‘제1회 고불청소년 국악제’·‘제1회 영인산 단풍축제’ 등등 올해 처음 열리지만, 연속성이 의문시되는 축제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박 시장은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는 이순신 장군 운구행렬을 재현하는 순국제전을 열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한편 2심 판결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국외출장도 활발히 다니는 중이다. 박 시장은 지난 12일 베트남을 '몰래' 다녀온데 이어 지금은 투자유치 명목으로 독일 출장 중이다. 마침 아산에선 소 럼피스킨 병이 발병해 발병 농가는 자식처럼 키우던 소를 살처분 해야 했다. 잦은 출장에 비난 여론이 쇄도하고, 역병이 창궐하는 와중이지만 박 시장은 아랑곳없이 국외출장 일정을 보내는 중이다. 이를 두고 익명을 요구한 지역예술인 A 씨는 "자중해야 할 시기에 외유성 출장에 열을 올리고 온갖 축제에 시민 혈세를 쏟아붓는 행태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의회 무시 박 시장, 고유권한 주장할 자격 있나? 무엇보다 심각한 건, 박 시장이 의회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산시의회는 지난 16일부터 26일까지 11일간 제245회 임시회 회기를 보냈다. 무엇보다 이번 임시회엔 시정질의가 있었다. 시정질의는 입법부가 시민 대의기구로서 집행부 시정 방향을 점검하고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정이었다. 그러나 박 시장은 시정질의가 있었던 3·4·5차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박 시장이 모든 시정질의에 답한 건 아니었지만, 본회의 불참은 의회를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게 괜한 트집일까? 거의 같은 시기, 천안시의회 역시 시정질의 순서가 예고돼 있었다. 박상돈 천안시장은 답변 유무와 무관하게 시정질의 전 일정 동안 자리를 지켰다. 이에 김희영 의장도 기자회견에서 "시정질문은 집행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에 올바른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그렇기에 집행부는 책임감 있고 성실한 자세로 답변에 임해야 하고 의회와 함께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 시정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런데도 박 시장은 사전에 충분히 조절 가능했던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시정질문에 참석하지 않았다. 자신의 권한만 강조할 뿐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행위이자, 38만 아산시를 이끌어가는 시장의 모습이라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뿐만 아니다. 박 시장은 올해 1월 의회가 의결한 교육지원 경비 예산 집행을 일방적으로 거부했다. 이를 두고 아산시의회와 지역 시민사회에선 "의회주의를 무시한 폭거"란 반발이 나왔다. 이러자 박 시장은 "결재할 땐 몰랐다가 사후에 알았다"는, 황당한 변명을 내놨다. 결국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9월 송남중 방과후 아카데미 사업 재개를 권고하면서 박 시장이 의회가 심의 의결한 예산을 뚜렷한 이유 없이 삭감했다고 적시했다. 이제 결론이다. 김 의장이 집행부의 고유권한을 침해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박 시장의 최근 행태는 더 이상 시정의 중요 의사결정을 맡겨선 안될 만큼 심각하다. 적어도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1·2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자중하는 게 맞다. 이렇게 시의회의장이 공개적으로 시장을 향해 예산편성권을 포기하라고 선언할 만큼 박 시장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박 시장이 정말 자신 있게 시정을 펼치고 싶다면 혐의부터 벗어야 할 일이다. 박 시장과 같은 당인 국민의힘 측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같은 당이라는 점보다 박 시장이 의회의 존재를 무시한 점에 더 무게중심을 뒀으면 하는 바람 전한다. 무엇보다 대법원이 이런 불필요한 논란이 없도록 법리검토를 엄중하면서도 신속히 진행해, 박 시장 거취에 대한 판단을 내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획] 아산시 행정 ‘총체적 난맥상’, 공직사회 존재 이유 잊었나?
[기획] 아산시 행정 ‘총체적 난맥상’, 공직사회 존재 이유 잊었나?
아산시청 전경. 아산시 행정이 총체적 난맥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아산신문] 아산시 행정이 엉망진창이다. 지난 26일 폐회한 아산시의회 제245회 임시회에선 시정질의가 4일간 이어졌다. 시정질의에선 지난 몇 개월 사이 논란이 일었던 굵직한 이슈현안이 질의 주제로 올라왔다. 더불어민주당 김미영 시의원(라 선거구)이 26일 오전 제6차 본회의에서 정리한 현안은 아래와 같다. -. 소규모도시계발심의위원회 -. 둔포 이지더원 허가를 포함한 아산시 인허가 과정 -. 국·도비 비 매칭 예산 수립과정 -. 아트밸리 매몰행정 및 예술감독 채용 과정 -. 교육경비로 인한 송남중 및 잘못된 인사 과정 -. 일관성 없는 결정으로 인해 행정 혼란을 야기 시킨 구령리 장례식장 -. 아산항 및 공공시설 관련 말바꾸기 행정 -. 산림복지지구 무효화 -. 인사권 남용으로 인한 소송 위에 적은 현안들은 수개월간 언론과 지역여론을 뜨겁게 달군 주제였다. 기자는 이 중 '송남중 방과후 아카데미'. 그리고 '아트밸리 행정' 중 특정 업체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집중 보도했다. 하지만 집행부의 답변은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수준이하였다. 먼저 국민권익위원회는 아산시에 송남중 방과후 아카데미 사업 재개를 권고했다. 시정질의에 나선 천철호 의원(민주, 다)은 이를 언급하며 권익위 권고 이행 여부를 물었다. 이에 대해 답변한 조일교 부시장은 권익위 권고를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아산시 재정을 들먹이며 '대안사업으로 충분히 지원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결국 권익위 권고를 '패싱'하겠다는 말이다. 송남중 공동체는 크게 반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부모 A 씨는 "조 부시장의 답변은 전형적인 책임회피"라고 비판했다. "송남중 방과후 아카데미는 아산시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해 중단됐다. 이에 대해 권익위가 시정 권고를 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재개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게 도리"라고 A 씨는 비판을 이어 나갔다. 그러면서 "이 사업은 기본적으로 아이들 돌봄과 직접 맞닿아 있는 문제다. 아산시가 아이들과 학부모 공동체에 왜 상처를 주느냐"고 날을 세웠다. 한편 김미성 시의원(민주, 라)은 광고대행사 I 업체 일감몰아주기 의혹에 질문을 집중했다. 하지만 조 부시장의 답변은 간단했다. "문화예술은 특수한 경우이며, 직접 조치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는 게 조 부시장의 답변이었다. 실로 경악스럽고 무책임하다. 광고대행사 I 업체 일감몰아주기 의혹은 문화예술과 관련된 문제가 아닌, 관과 특정업체가 유착된 정황을 드러내는 사례다. 더구나 I 업체 조 모 대표가 중국에서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는 아들 명의로 페이퍼컴퍼니 의혹을 받는 회사를 세우고 아산시와 계약한 정황은 사실로 확인될 경우 형사처벌까지 이뤄지는 심각한 사안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의혹은 아산경찰서가 현재 수사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예술인 B 씨는 "광고대행사 I 업체가 아산시와 빈번하게 계약할 수 있었던 데엔 국장급 공무원 ㅇ씨의 영향이 컸다. 이 업체 조 대표와 ㅇ씨는 여고 동창으로 오랜 기간 유착해왔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 기자가 집중 보도하고 있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 시행 당시 ㅇ씨는 담당부서 과장이었고 민선 8기 박경귀 시장 취임 이후 비서실장을 거쳐 문화복지국장으로 영전했다. 그리고 그 사이 조 대표는 민선 8기 '아트밸리' 사업을 대거 수주했다. (이는 조 대표 스스로 인정했다) 시장 심기 ‘철통’ 경호 아산시, 각종 현안엔 ‘아몰랑’ 시정질의에 나선 천철호 의원(민주, 다)은 송남중 방과후 아카데미 사업 재개를 권고한 권익위 권고 이행 여부를 물었다. 하지만 조일교 부시장은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일관했다. Ⓒ 사진 = 아산시의회 사무국 제공 아산시는 지난 8월 폐쇄형 온라인 커뮤니티에 박 시장을 비판하는 게시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공무직 노동자인 아산시 비정규직 지회 윤영숙 지회장에 대해 감사를 벌이고 정직 1개월 징계를 내렸다. 이토록 박 시장 심기를 ‘꼼꼼히’ 챙기는 아산시가 왜 더 큰 의혹에 대해선 미온적인지 그 이유를 도무지 알기 어렵다. 그 밖의 사안을 다루는 아산시의 태도는 과연 행정기관으로서 존재의미를 묻게 한다. 김미영 의원은 5분 발언에서 "행정의 역할은 법 아래에서 법의 규제를 받으면서 국가 목적 또는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행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국가 작용"이라며 "이번 시정질의를 통해 들은 답변들 중 잘못된 점이 명확히 밝혀지는 사안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책임을 회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경고, 아산시에 몸담은 모든 공직자들이 새겨야 할 것이다. 기자 역시 엄하게 책임을 따져 묻고자 한다.
[이슈 분석] 날로 커지는 ‘차별금지법’ 압박, 민주당 견딜 수 있을까?
[이슈 분석] 날로 커지는 ‘차별금지법’ 압박, 민주당 견딜 수 있을까?
지난 12일 오후 양승조 충남도지사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온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시위대의 호소에 아무런 반응 없이 개소식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아산신문] 지난 12일 오후 충남 천안에 전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총괄선대위장, 박지현·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 강훈식 충남도당 위원장,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이날 천안에선 양승조 충남도지사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이 열렸는데, 개소식을 축하하고자 중량급(?) 인사들이 총 출동한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온다는 소식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15일 기준 10일째 단식 중인 충남인권활동가모임 ‘부뜰’ 이진숙 대표, 그리고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충남차제연) 임푸른 대표와 활동가들도 속속 현장에 집결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입법을 호소하는 글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진숙 대표와 임푸른 대표는 선거사무소 입구에서 시위를 벌이며 당 지도부에게 차별금지법 입법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재명 총괄선대위장 등 당 지도부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이 총괄선대위장은 “차별금지법 입법을 당론으로 채택해달라”는 이진숙 대표의 호소에 “하겠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강압적으로 하면 안된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시위대의 호소에 아무런 반응 없이 개소식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장에 모인 민주당 당원들은 충남차제연 활동가들의 시위를 불편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선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와 이종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이 한달 넘게 단식 중이다. 충남에선 이진숙 부뜰 대표와 임푸른 충남차제연 대표가 연대 단식농성에 들어가 현 시점까지 농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전국으로 퍼지는 양상이다. 14일 오전엔 인천지역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 활동가들이 이재명 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 현장을 찾아 기습 시위를 벌였다. 충북 차제연도 17일 오후 민주당 충북도당 앞 기자회견과 단식 농성 개시를 예고했다. 15년 미룬 차별금지법, 이번엔 가능할까? 사실 차별금지법 입법 논의는 새삼스럽지 않다.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장애·나이·학력·종교·성적 지향성 등을 이유로 고용이나 교육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자는 게 차별금지법의 기본 뼈대다.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시점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차별금지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7년 당시엔 일부 세력, 특히 보수 개신교 세력들이 성적 지향을 문제 삼아 극력 반대하고 나섰고, 이 같은 태도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20대 국회에서 입법 논의가 꿈틀거렸다. 이어 21대 국회에선 관련 법안이 4건이나 발의됐다. 하지만 국회의 시계는 멈춰선 상태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변수가 생겼다. 민주당이 4월 이른바 ‘검수완박’을 추진하면서 차별금지법 입법을 압박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검찰 등 여러 이해당사자의 반대에도 다수의석으로 검수완박을 밀어 붙였으니, 차별금지법 역시 못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였다. 검수완박 논의가 한창인 즈음 시민단체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결국 지난 15년 동안 나중의 나중으로 밀려온 차별금지법 제정은 다른 누구도 아닌 민주당의 의지 부족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지난 2주 동안 ‘검수완박’과 차별금지법이 다뤄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에서도 긍정적인 신호가 오는 듯 했다.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4월 “문재인 대통령,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 임기내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공동비대위장은 원내지도부에도 “그는 “국민의힘과 협의해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를 개최하고 법안 심의에 착수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논의는 더 나가지 못했다.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이 이슈로 떠오를 때 마다 ‘사회적 합의’를 내세우며 입법을 미뤘다.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도 대선 후보 시절 “다만 다수 여당의 강행 처리가 아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6월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명 동의를 얻었다. 10만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 당시 이미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상태이기에 법사위 법안심사소위 심사도 가능했다. 게다가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달 8일 국민 67%가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차별금지법 입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입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단식 농성자의 호소를 ‘강압적’이라며 회피한 이재명 총괄선대위장의 반응은 현재 민주당의 온도를 짐작케 한다. 현재 민주당은 ‘슈퍼 야당’이다. 총선 후 의석 일부를 잃었지만 여전히 의회 다수당이다. 그리고 중요하게는 개헌을 제외하고 모든 걸 할 수 있는 위치다. 심지어 지난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선 상대인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에 대해 공공연히 탄핵을 입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미뤄오고 있다. 검찰 등 이해당사자의 우려에도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계속해서 차별금지법을 미룬다면, 민주당은 당장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선택적으로 입법을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6.1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의 발목을 붙잡을 가능성 역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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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아산시 행정 ‘총체적 난맥상’, 공직사회 존재 이유 잊었나?
아산시청 전경. 아산시 행정이 총체적 난맥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아산신문] 아산시 행정이 엉망진창이다. 지난 26일 폐회한 아산시의회 제245회 임시회에선 시정질의가 4일간 이어졌다. 시정질의에선 지난 몇 개월 사이 논란이 일었던 굵직한 이슈현안이 질의 주제로 올라왔다. 더불어민주당 김미영 시의원(라 선거구)이 26일 오전 제6차 본회의에서 정리한 현안은 아래와 같다. -. 소규모도시계발심의위원회 -. 둔포 이지더원 허가를 포함한 아산시 인허가 과정 -. 국·도비 비 매칭 예산 수립과정 -. 아트밸리 매몰행정 및 예술감독 채용 과정 -. 교육경비로 인한 송남중 및 잘못된 인사 과정 -. 일관성 없는 결정으로 인해 행정 혼란을 야기 시킨 구령리 장례식장 -. 아산항 및 공공시설 관련 말바꾸기 행정 -. 산림복지지구 무효화 -. 인사권 남용으로 인한 소송 위에 적은 현안들은 수개월간 언론과 지역여론을 뜨겁게 달군 주제였다. 기자는 이 중 '송남중 방과후 아카데미'. 그리고 '아트밸리 행정' 중 특정 업체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집중 보도했다. 하지만 집행부의 답변은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수준이하였다. 먼저 국민권익위원회는 아산시에 송남중 방과후 아카데미 사업 재개를 권고했다. 시정질의에 나선 천철호 의원(민주, 다)은 이를 언급하며 권익위 권고 이행 여부를 물었다. 이에 대해 답변한 조일교 부시장은 권익위 권고를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아산시 재정을 들먹이며 '대안사업으로 충분히 지원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결국 권익위 권고를 '패싱'하겠다는 말이다. 송남중 공동체는 크게 반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부모 A 씨는 "조 부시장의 답변은 전형적인 책임회피"라고 비판했다. "송남중 방과후 아카데미는 아산시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해 중단됐다. 이에 대해 권익위가 시정 권고를 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재개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게 도리"라고 A 씨는 비판을 이어 나갔다. 그러면서 "이 사업은 기본적으로 아이들 돌봄과 직접 맞닿아 있는 문제다. 아산시가 아이들과 학부모 공동체에 왜 상처를 주느냐"고 날을 세웠다. 한편 김미성 시의원(민주, 라)은 광고대행사 I 업체 일감몰아주기 의혹에 질문을 집중했다. 하지만 조 부시장의 답변은 간단했다. "문화예술은 특수한 경우이며, 직접 조치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는 게 조 부시장의 답변이었다. 실로 경악스럽고 무책임하다. 광고대행사 I 업체 일감몰아주기 의혹은 문화예술과 관련된 문제가 아닌, 관과 특정업체가 유착된 정황을 드러내는 사례다. 더구나 I 업체 조 모 대표가 중국에서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는 아들 명의로 페이퍼컴퍼니 의혹을 받는 회사를 세우고 아산시와 계약한 정황은 사실로 확인될 경우 형사처벌까지 이뤄지는 심각한 사안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의혹은 아산경찰서가 현재 수사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예술인 B 씨는 "광고대행사 I 업체가 아산시와 빈번하게 계약할 수 있었던 데엔 국장급 공무원 ㅇ씨의 영향이 컸다. 이 업체 조 대표와 ㅇ씨는 여고 동창으로 오랜 기간 유착해왔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 기자가 집중 보도하고 있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 시행 당시 ㅇ씨는 담당부서 과장이었고 민선 8기 박경귀 시장 취임 이후 비서실장을 거쳐 문화복지국장으로 영전했다. 그리고 그 사이 조 대표는 민선 8기 '아트밸리' 사업을 대거 수주했다. (이는 조 대표 스스로 인정했다) 시장 심기 ‘철통’ 경호 아산시, 각종 현안엔 ‘아몰랑’ 시정질의에 나선 천철호 의원(민주, 다)은 송남중 방과후 아카데미 사업 재개를 권고한 권익위 권고 이행 여부를 물었다. 하지만 조일교 부시장은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일관했다. Ⓒ 사진 = 아산시의회 사무국 제공 아산시는 지난 8월 폐쇄형 온라인 커뮤니티에 박 시장을 비판하는 게시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공무직 노동자인 아산시 비정규직 지회 윤영숙 지회장에 대해 감사를 벌이고 정직 1개월 징계를 내렸다. 이토록 박 시장 심기를 ‘꼼꼼히’ 챙기는 아산시가 왜 더 큰 의혹에 대해선 미온적인지 그 이유를 도무지 알기 어렵다. 그 밖의 사안을 다루는 아산시의 태도는 과연 행정기관으로서 존재의미를 묻게 한다. 김미영 의원은 5분 발언에서 "행정의 역할은 법 아래에서 법의 규제를 받으면서 국가 목적 또는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행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국가 작용"이라며 "이번 시정질의를 통해 들은 답변들 중 잘못된 점이 명확히 밝혀지는 사안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책임을 회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경고, 아산시에 몸담은 모든 공직자들이 새겨야 할 것이다. 기자 역시 엄하게 책임을 따져 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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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분석] 날로 커지는 ‘차별금지법’ 압박, 민주당 견딜 수 있을까?
[이슈 분석] 날로 커지는 ‘차별금지법’ 압박, 민주당 견딜 수 있을까?
지난 12일 오후 양승조 충남도지사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온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시위대의 호소에 아무런 반응 없이 개소식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아산신문] 지난 12일 오후 충남 천안에 전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총괄선대위장, 박지현·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 강훈식 충남도당 위원장,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이날 천안에선 양승조 충남도지사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이 열렸는데, 개소식을 축하하고자 중량급(?) 인사들이 총 출동한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온다는 소식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15일 기준 10일째 단식 중인 충남인권활동가모임 ‘부뜰’ 이진숙 대표, 그리고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충남차제연) 임푸른 대표와 활동가들도 속속 현장에 집결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입법을 호소하는 글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진숙 대표와 임푸른 대표는 선거사무소 입구에서 시위를 벌이며 당 지도부에게 차별금지법 입법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재명 총괄선대위장 등 당 지도부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이 총괄선대위장은 “차별금지법 입법을 당론으로 채택해달라”는 이진숙 대표의 호소에 “하겠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강압적으로 하면 안된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시위대의 호소에 아무런 반응 없이 개소식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장에 모인 민주당 당원들은 충남차제연 활동가들의 시위를 불편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선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와 이종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이 한달 넘게 단식 중이다. 충남에선 이진숙 부뜰 대표와 임푸른 충남차제연 대표가 연대 단식농성에 들어가 현 시점까지 농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전국으로 퍼지는 양상이다. 14일 오전엔 인천지역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 활동가들이 이재명 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 현장을 찾아 기습 시위를 벌였다. 충북 차제연도 17일 오후 민주당 충북도당 앞 기자회견과 단식 농성 개시를 예고했다. 15년 미룬 차별금지법, 이번엔 가능할까? 사실 차별금지법 입법 논의는 새삼스럽지 않다.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장애·나이·학력·종교·성적 지향성 등을 이유로 고용이나 교육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자는 게 차별금지법의 기본 뼈대다.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시점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차별금지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7년 당시엔 일부 세력, 특히 보수 개신교 세력들이 성적 지향을 문제 삼아 극력 반대하고 나섰고, 이 같은 태도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20대 국회에서 입법 논의가 꿈틀거렸다. 이어 21대 국회에선 관련 법안이 4건이나 발의됐다. 하지만 국회의 시계는 멈춰선 상태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변수가 생겼다. 민주당이 4월 이른바 ‘검수완박’을 추진하면서 차별금지법 입법을 압박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검찰 등 여러 이해당사자의 반대에도 다수의석으로 검수완박을 밀어 붙였으니, 차별금지법 역시 못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였다. 검수완박 논의가 한창인 즈음 시민단체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결국 지난 15년 동안 나중의 나중으로 밀려온 차별금지법 제정은 다른 누구도 아닌 민주당의 의지 부족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지난 2주 동안 ‘검수완박’과 차별금지법이 다뤄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에서도 긍정적인 신호가 오는 듯 했다.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4월 “문재인 대통령,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 임기내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공동비대위장은 원내지도부에도 “그는 “국민의힘과 협의해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를 개최하고 법안 심의에 착수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논의는 더 나가지 못했다.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이 이슈로 떠오를 때 마다 ‘사회적 합의’를 내세우며 입법을 미뤘다.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도 대선 후보 시절 “다만 다수 여당의 강행 처리가 아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6월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명 동의를 얻었다. 10만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 당시 이미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상태이기에 법사위 법안심사소위 심사도 가능했다. 게다가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달 8일 국민 67%가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차별금지법 입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입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단식 농성자의 호소를 ‘강압적’이라며 회피한 이재명 총괄선대위장의 반응은 현재 민주당의 온도를 짐작케 한다. 현재 민주당은 ‘슈퍼 야당’이다. 총선 후 의석 일부를 잃었지만 여전히 의회 다수당이다. 그리고 중요하게는 개헌을 제외하고 모든 걸 할 수 있는 위치다. 심지어 지난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선 상대인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에 대해 공공연히 탄핵을 입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미뤄오고 있다. 검찰 등 이해당사자의 우려에도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계속해서 차별금지법을 미룬다면, 민주당은 당장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선택적으로 입법을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6.1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의 발목을 붙잡을 가능성 역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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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예산권 포기’ 압박 김희영 의장, 집행부와 전면전 선언했나?
[시론] ‘예산권 포기’ 압박 김희영 의장, 집행부와 전면전 선언했나?
아산시의회 김희영 의장이 30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해 박경귀 아산시장을 향해 예산편성권 포기를 압박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아산신문] 아산시의회 김희영 의장이 어제(30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해 폭탄선언을 했다. 박경귀 아산시장을 직접 겨냥해 2024년 예산안 편성권 포기를 선언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10월에서 11월로 넘어가는 현 시점은 중앙·지방 할 것 없이 예산안 편성을 두고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 일쑤다. 하지만 이렇게 지자체장을 향해 시의회 의장이 예산편성권 포기를 공개 압박한 사례는 그야말로 초유의 일이다. 당장 국민의힘은 반발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시의원 일동은 31일 오후 입장문을 내고 "의장으로서 의원들과의 단 한 번의 소통과 협의도 없이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하여 국민의힘 의원 일동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임을 밝혀 둔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김희영 의장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2024년 6월 말이면 의장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김 의장은 내년도 예산에 대한 의회의 의결권을 의결할 의장으로서의 자격이 없으니 내년도 예산심사의 권한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논란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예산편성권은 지자체장을 정점으로 한 집행부(혹은 행정부) 고유권한이다. 반면 기초단위 의회는 예산심의·의결권을 갖는다. 이건 풀뿌리 민주주의 시스템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박 시장을 겨냥한 김 의장의 예산편성권 포기 압박은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개입이고, 삼권분립을 거스르는 중대 사안이다. 개인적으로 김 의장이 기자회견을 예고했을 때 다소 의아했다. 김 의장이 기자회견을 예고한 시점은 지난 27일로, '박경귀 시장의 2024년 본예산 편성 관련'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혹시 박 시장 등 집행부가 불합리한 예산을 편성한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고, 이에 본 기자회견 때 '예산안이 시의회에 올라왔나?'고 물었다. 김 의장의 답변은 '담당 실과에서 협의중'이었다. 한편으론 안도했지만,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와중에 '예산편성권 포기'를 압박하는 건 너무 나아간 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더구나 앞서 적었듯, 김 의장의 공개 압박은 집행부 고유권한 침해로 보일 여지는 충분했고 실제 취재진들은 이 점에 질문을 집중했다. 그러나, 적어도 박 시장의 처지와 최근 보이는 행태를 감안해 볼 때 크게 이치에 어긋나지는 않는다는 판단이다. 박경귀 아산시장은 거취가 불투명함에도 실효성 없는 축제와 잦은 외유로 빈축을 사고 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자주 언급하지만 박 시장은 허위사실 유포로 기소돼 1·2심에서 잇달아 1500만원 벌금형을 받은 처지다. 박 시장은 원심·항소심 판결 모두를 수용할 수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은 현재 법리 검토 중이다. 아직 법원 판단이 최종 확정되지 않았지만 하급심 판단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게 법조인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단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재판부가 박 시장의 허위사실 유포 혐의를 굉장히 심각하게 여기고 있음을 감지한다. 여기에 박 시장이 재판 과정에서 보인 행태에 대해서도 시선이 곱지 않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 같은 맥락을 감안해 볼 때, 박 시장은 시장직 상실을 피하기 어려운 처지다. 그런데도 박 시장은 최근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로 일관하는 중이다. 지난 몇 달 사이 아산에선 축제가 이어졌다. 그런데 '제2회 100인 100색전'·'제1회 재즈 페스티벌'·‘제1회 고불청소년 국악제’·‘제1회 영인산 단풍축제’ 등등 올해 처음 열리지만, 연속성이 의문시되는 축제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박 시장은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는 이순신 장군 운구행렬을 재현하는 순국제전을 열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한편 2심 판결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국외출장도 활발히 다니는 중이다. 박 시장은 지난 12일 베트남을 '몰래' 다녀온데 이어 지금은 투자유치 명목으로 독일 출장 중이다. 마침 아산에선 소 럼피스킨 병이 발병해 발병 농가는 자식처럼 키우던 소를 살처분 해야 했다. 잦은 출장에 비난 여론이 쇄도하고, 역병이 창궐하는 와중이지만 박 시장은 아랑곳없이 국외출장 일정을 보내는 중이다. 이를 두고 익명을 요구한 지역예술인 A 씨는 "자중해야 할 시기에 외유성 출장에 열을 올리고 온갖 축제에 시민 혈세를 쏟아붓는 행태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의회 무시 박 시장, 고유권한 주장할 자격 있나? 무엇보다 심각한 건, 박 시장이 의회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산시의회는 지난 16일부터 26일까지 11일간 제245회 임시회 회기를 보냈다. 무엇보다 이번 임시회엔 시정질의가 있었다. 시정질의는 입법부가 시민 대의기구로서 집행부 시정 방향을 점검하고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정이었다. 그러나 박 시장은 시정질의가 있었던 3·4·5차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박 시장이 모든 시정질의에 답한 건 아니었지만, 본회의 불참은 의회를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게 괜한 트집일까? 거의 같은 시기, 천안시의회 역시 시정질의 순서가 예고돼 있었다. 박상돈 천안시장은 답변 유무와 무관하게 시정질의 전 일정 동안 자리를 지켰다. 이에 김희영 의장도 기자회견에서 "시정질문은 집행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에 올바른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그렇기에 집행부는 책임감 있고 성실한 자세로 답변에 임해야 하고 의회와 함께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 시정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런데도 박 시장은 사전에 충분히 조절 가능했던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시정질문에 참석하지 않았다. 자신의 권한만 강조할 뿐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행위이자, 38만 아산시를 이끌어가는 시장의 모습이라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뿐만 아니다. 박 시장은 올해 1월 의회가 의결한 교육지원 경비 예산 집행을 일방적으로 거부했다. 이를 두고 아산시의회와 지역 시민사회에선 "의회주의를 무시한 폭거"란 반발이 나왔다. 이러자 박 시장은 "결재할 땐 몰랐다가 사후에 알았다"는, 황당한 변명을 내놨다. 결국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9월 송남중 방과후 아카데미 사업 재개를 권고하면서 박 시장이 의회가 심의 의결한 예산을 뚜렷한 이유 없이 삭감했다고 적시했다. 이제 결론이다. 김 의장이 집행부의 고유권한을 침해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박 시장의 최근 행태는 더 이상 시정의 중요 의사결정을 맡겨선 안될 만큼 심각하다. 적어도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1·2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자중하는 게 맞다. 이렇게 시의회의장이 공개적으로 시장을 향해 예산편성권을 포기하라고 선언할 만큼 박 시장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박 시장이 정말 자신 있게 시정을 펼치고 싶다면 혐의부터 벗어야 할 일이다. 박 시장과 같은 당인 국민의힘 측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같은 당이라는 점보다 박 시장이 의회의 존재를 무시한 점에 더 무게중심을 뒀으면 하는 바람 전한다. 무엇보다 대법원이 이런 불필요한 논란이 없도록 법리검토를 엄중하면서도 신속히 진행해, 박 시장 거취에 대한 판단을 내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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