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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순 칼럼] 세상의 리더들이여 유능한 관리자가 되자
[임홍순 칼럼] 세상의 리더들이여 유능한 관리자가 되자
▲ 임홍순 논설위원. [아산신문] 대통령부터 정치지도자나 시장 군수 구청장에 이르기까지 리더십 관련 연일 말들이 많은 요즈음이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유능한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이런 말이 있다. 또 “삼류리더는 내 능력을 사용하고, 이류리더는 남의 힘을 사용하고, 일류리더는 남의 지혜를 사용한다.”라는 말도 있다. 유능한 관리자는 남 탓보다 내 탓을 우선적으로 돌아보고 반성한다는 뜻일 것이다. 나라의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지자체장, 공공기관장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필자의 경우에도 삼십여년 공직생활하며 군수와 시장을 14명 모시고 일하면서 이들의 리더십을 직접 겪어봤고 대다수 직원들 평 또한 대동소이하다. 삼류리더 측에도 못 끼는 하류리더도 있었고 현직 시나 퇴직 후에도 공직자나 시민들의 존경을 받는 일류리더도 있었다. 있는 둥 마는 둥 임기만 때운 이도 있었고 직원들의 능력을 무시하고 작은 것까지 세세하게 지시하며 확인하는가 하면 유독 이권에만 눈이 어두워 “스펀지”라는 별명을 들었던 이도 있었다. 실패한 프로젝트의 경우 대부분 전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직원들이 잘못했다며 남 탓으로 돌리는 그런 리더도 있었다. 반면 하위직부터 고위직까지 각 직급·직렬별 폭 넓은 대화로 창출된 아이디어를 접목하고 여기에 각 계층 공감대를 확보하면서 추진력을 담보하여 큰 프로젝트를 멋지게 성공시킨 이도 있었다. 훌륭한 명필이나 유능한 목수나 정직한 농부는 결코 주변 탓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내 주변을 스스로 이롭게 만들어 간다. 보여주기식 가식적인 행동이나 번지르르한 말장난이니 임시방편적인 행위는 결코 리더가 할 일이 아니다. 훌륭한 리더는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을 보고, 조직원들에게는 방법보다 방향을 알려주며, 임기 내 조급한 성과주의보다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구상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정책팀장시 시장께서 “인구 50만 대도시 진입 계획”과 “KTX 천안아산역 개통에 따른 천안시 발전전략”에 대해 보고서를 만들어 일주일 내로 달라고 하셨다. “어떤 식으로 할까요?” 하니 “자네가 알아서 해봐”라고 하셔서 일주일 동안 끙끙대며 만들었다. 보고서를 드리니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훌륭한 보고서다”라고 칭찬하면서 격려금도 주었다. 그때 시장께서 ’이렇게 해라‘ 했으면 그것밖에 넣지를 못했는데 ‘알아서 해봐’라고 하였기에 종합적인 아이디어를 보태게 된 것이다. 사람의 능력은 무한하기에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바로 남의 지혜를 사용하는 일류리더의 자세이기도 하다. 남 탓하지 말고 일할 맛 나는 조직의 분위기를 잘 만들어 가야 한다. 신바람 나는 분위기 속에서는 조직원 모두가 유능한 직원이 된다. 리더의 능력 여하에 따라 조직의 분위기와 조직원의 능력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에 세상의 리더들이여 분발하자.
[김성윤 칼럼]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김성윤 칼럼]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 김성윤 논설위원. [아산신문] 한사람이 태어나기 위하여 몇 사람의 혈액이 제공되었는가? 부모 대에는 두 분, 조부모 대에는 네 분, 증조부모 대에는 여덟 분, 고조부모 대에는 열여섯 분, 5대 조부모대로 올라가면 32분의 피가 석이게 되고, 10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1,024분이나 된다. 15대로 올라가면 32,768분, 20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1,048,576인이나 되는 분들의 피가 섞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만의 피가 섞여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불과 20대 밖에 안 된다. 만약 지구상에 인류가출현한 이후 사람 노릇을 하면서 살기 시작한 몇 백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나의 옆에 있는 사람은 나의 친척이요, 인척이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잊은 채 팬덤을 만들고 개딸을 외치고 있지 않는가?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세대 간의 갈등과 성별 갈등을 부추겨 왔다. 무수한 사람들의 핏줄을 받아서 탄생한 나는 나의 전유물이 아닌데도 나의 전유물처럼 나를 험하게 사용해 왔다, 나의 몸과 정신은 가깝게는 조상의 것이며 인류의 것이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다. 창세기 2장 22절을 보면 모든 인류는 아담의 세포에서 자라난 생명체임을 알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건축하시고, 그 여자를 그에게 데려가셨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는 실제로 한 몸이라고 말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옆 사람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 살아야 한다. 그것이 박애의 정신이요, 그리스도 사랑의 정신이다. 이런 정신을 망각한 채 잘 먹고, 잘 입고, 호사스러운 주택에서 나만 잘 사는 것이 바른 삶이라고 생각하는 삶은 삐뚤어진 삶이요, 그리스도 정신을 망각한 삶이다. 안일을 탐하고 말초 신경의 쾌락을 추구하면서 사는 삶은 배반의 삶이요, 그리스도의 향기가 실종된 삶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은 어떤 삶일까?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삶을 사는 것이다. 한자의 거짓위(僞)자는 사람인(人)자와 할위(爲)자가 합쳐진 글자다. 그 만큼 인간의 행위에는 거짓이 있다는 의미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요, 보람을 찾는 동물이다. 그러나 세상에 무의미한일이나 보람 없는 일에 매달린 사람도 많다. 그런 삶은 고통이요, 고역이며 지옥이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타인과 나누고 공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와 내 이웃과 행복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독일의 심리학자 엘리히 프롬은 “탐욕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끝없이 노력함으로써 사랑을 고갈시키는 밑바탕 없는 늪이다.” 라고 했다. 소위 팬덤처럼 어떤 사람이 한번 좋으면 어떤 일을 해도 눈 딱 감고 편을 드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저주하고 미워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에머슨은 “삶이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보상은, 다른 이를 성심껏 도울 때 자기 자신의 삶 또한 나아지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명언처럼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길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고통 받고 있는 이웃에게 그리스도 정신인 사랑의 실천과 나눔이야말로 사람답게 사는 길이요, 이 시대의 양심이 되어 옳음의 사회를 만들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김성윤 칼럼] 허구를 쫒는 비극은 소설속의 일일까?
[김성윤 칼럼] 허구를 쫒는 비극은 소설속의 일일까?
▲ 김성윤 논설위원. [아산신문] 목걸이라는 단편소설은 프랑스 소설가 모파상의 작품이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인간의 헛된 욕심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 준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마틸드는 미녀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운 만큼 생활도 호사스럽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문교부의 하급 관리의 아내가 된 그녀는 항시 불만스러운 일상을 영위하고 있던 어느 날 문교부 장관 내외가 파티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장을 받고 몹시 기뻐한다. 하지만 바로 파티에 입고 갈 마땅한 옷이 없다는 고민에 빠진다. 이를 본 남편 르와젤이 여름휴가 비용으로 아내 몰래 모아두었던 돈으로 아내 마틸드의 야회복을 마련해 준다. 그러고도 만족하지 못했다. 목에 걸 목걸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 마틸드는 친구이고 부자였던 포레스트로부터 호사스러운 목걸이를 빌려서 걸고 파티에 나갔다. 야회복에 화려한 목걸이까지 착용한 마틸드는 다른 어느 여인보다도 아름다웠고 기풍 있게 보였다. 여기에 타고난 그녀의 애교가 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들뜨고 기쁜 나머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춤을 춘다. 즐겁고 신나는 파티는 새벽이 되어서야 끝났다. 부부가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다음 날 이른 새벽이었다. 즐겁고 신났던 파티를 잊지 못한 마틸드는 주인공처럼 놀았던 파티에서의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기 위하여 거울 앞에 다가선 순간 깜짝 놀란다. 친구에게 빌린 값비싼 목걸이가 목에 없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부부는 허둥지둥 목걸이를 찾아 나섰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부부는 의논 끝에 잊어버린 목걸이와 똑같은 것을 사서 친구에게 돌려준다. 하지만 그 목걸이를 구입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남편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까지 팔아야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여기저기서 빚까지 얻고서야 비슷한 목걸이를 구해서 친구에게 돌려준다. 그로 인해서 진 빚을 온갖 고생 끝에 다 갚는 동안 세월은 10년이나 지나버렸다. 얼마나 고생했는지 마틸드의 얼굴은 아름다움이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마틸드는 친구 포레스티에를 거리에서 만난다. 그리고 목걸이를 잊어버린 이야기며 목걸이를 돌려주기 위해 고생한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그 말을 들은 친구 포레스티에는 놀라면서 말한다. “어마나, 그때 빌려준 건 가짜였는데!” 허구를 쫓다가 인생을 낭비한 모파상의 목걸이란 단편의 줄거리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은 하구"라고 전문가들이 그토록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나쁜 결과는 윤석열 정부의 몫이요, 국민들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교훈은 '안보 없는 평화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난민은 644만여 명 이상이나 된다. 전 국민의 20%에 육박한다. 이들 난민은 어린이와 여성이 전체의 90% 이상이다. 이는 허구를 쫒다가 지불하는 대가요, 고통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는 동상이몽의 '평화 쇼'도 허구요,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도 허구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교수는 EBS ‘위대한 수업’ 신년 특집 4부작에 출연해 ”기술발전과 인류가 점점 더 연합함으로써 우리는 석기 시대의 선조보다 수천 배는 강력해졌지만, 행복은 배로 커지지 않았다. 인간은 점점 더 큰 힘을 얻는 데는 능숙해졌다지만 그 힘을 행복으로 바꾸는 것은 미숙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독재자는 언론을 통제하고 권력으로 실수를 숨기거나 전가하려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 정부 아래서는 언론자유가 있고 견제하는 권력이 있어서 실수를 폭로하거나 지도자나 정부를 교체하기도 한다. 민주주의는 실수에서 교훈을 얻고 그걸 통해서 발전한다.”고 했다. 또 “우리는 민주주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선거만 하면 민주주의를 인정 하고, 51%의 유권자가 표를 준 정당의 정부가 되면 이 정부를 민주주의 정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다수결 독재’일 뿐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모두에게 항상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하며 다수 의견뿐 아니라 소수 의견도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는 소수 의견이 무시되고 극성 지지자들의 입김과 이득만 반영되는 ’팬덤’(fandom) 정치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절대자를 향한 종교적 숭배와 같은 정치 팬덤은 비판과 반론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그들과 다른 생각을 표시하면 ‘배신자’요, 악마로까지 매도되고 있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이것이야말로 허구를 쫒으며 인생을 낭비 했던 목걸이의 주인공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임홍순 칼럼] 정치인들도 상선약수와 이제염오의 마음으로
[임홍순 칼럼] 정치인들도 상선약수와 이제염오의 마음으로
임홍순 논설위원. [아산신문] 노자의 도덕경에 상선약수(上善若水)가 나온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온갖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살 때는 물처럼 땅을 좋게 하고, 마음을 쓸 때는 물처럼 그윽하게 하며, 사람을 사귈 때는 물처럼 어질게 하고, 말할 때는 물처럼 믿음 있게 하며, 다스릴 때는 물처럼 바르게 하고, 일할 때는 물처럼 능하게 하며, 움직일 때는 물처럼 때를 좋게 하라. 그저 오로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다 이전투구 아귀다툼의 선거판도 막을 내리고 낙선한 이는 아픈 상처를 보듬으며 당선한 이는 주민과 약속한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을 것이다. 후보자들의 낙선과 당선 부침을 보면서 인간의 욕심을 생각해 본다. 당내 경선에서 후보자들은 경선후 원팀이 되어야 한다며 모두가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특히나 과열의 경우 탈락측에서는 의기소침으로 적극적인 활동이 눈에 보이지 않으며 최종적으로 투표에도 기권하는 사례가 있다. 더구나 상대측 후보가 나이가 많거나 기반이 확실하지 않을 경우 다음선거를 대비하기 위해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또한, 같은 당 후보가 젊으면 재선 삼선이 가능하기에 탈락후보자의 입장에서는 다음번 기회가 적어짐에 따라 부득불 역선택이나 기권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는 게 정치인들의 속성이라 한다. 이는 같은 당 보다 나의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이기에 이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고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이합집산(離合集散) 이나 철새정치인 또한 나만 살기 위해 우리 편을 몰살시키는 사례와도 부합된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후보자나 지지자들의 이러한 사욕으로 인해 능력 있는 일꾼들이 사장되는 사례가 전국적으로 아주 많다. 그래서 정치를 진흙탕 싸움이라고 했을 것이다. 연꽃의 특성 중에 이제염오(離諸染汚)라고 있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그 잎과 꽃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주변의 잘못된 것에 물들지 않고 세상을 아름답게 해주기에 그런 향기를 가꾸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다. ‘내가 최고다. 내가 가장 유능하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만심을 버리고 나보다 좀 더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을 경우 양보의 미덕과 함께 대승적 차원에서 정성을 다해 성원의 마음을 보내야 할 것이다. 싸움에서 내부 분열이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했다. 역사적 사실을 돌아보더라도 내부 다툼으로 인해 나라와 조직이 망한 사례도 부지기수이듯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고금의 철칙이다. 이제 차기 국회의원 선거도 2년이 채 남지 않았고 지방선거도 길것같은 4년 후딱 지나가고 금방 다가온다. 나의 작은 욕심보다 우리를 향한 큰 양보를 생각해 주고 나만이 아니라 우리라는 큰 틀을 지향할 때 냄새나는 진흙 속에서 꽃을 피우는 꽃향기가 온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물과 같은 상선약수의 마음으로 서로 다투지 말고 고개 숙이며 더 낮은 곳을 향해 내맘 기울여 흐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성윤 칼럼] 국민의 소리를 겸허하게 경청하라
[김성윤 칼럼] 국민의 소리를 겸허하게 경청하라
김성윤 논설위원. [아산신문] 2022년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지방의회 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도 동시에 실시되었다. 6월 1일 10시 50분경 필자가 사는 지역의 투표소로 갔지만 선거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했다. 나를 위해 일 할 수 있는 지방 일꾼을 뽑는데 정작 유권자들은 관심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최종 투표율도 50.9%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투표율이 이처럼 저조한 것일까? 그 이유는 내가 왜 투표장에 가서 투표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투표하면 우리가 이긴다.’든가 '국정 안정론' 또는 '정권 견제론'이라는 공허한 구호로는 유권자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나를 위한 내 고장의 현안의 해결과 발전을 위한 지역 일꾼이라는 후보자를 누가 누군지 나 역시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선거를 해야 하므로 당만 보고 투표하였다. 투표를 한 후 생각해보니 기초자치단체의원 선거가 꼭 필요한가? 라는 회의적인 생각마저 들면서 이쯤에서 법을 개정하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선, 총선, 재·보궐 등 수많은 선거가 있을 때면 정치인들은 더 잘 사는 내 고장을 만들겠다고 목청을 높인다. 하지만 당선이 되고 나면 내가 언제 그런 소리를 했느냐는 식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봉사하고 헌신하기보다 당파의 이익에 따라 더 맹종한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지역일꾼을 자처한 사람역시 다를 바 없었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라고 국회의원에 당선시켜 주었건만 소통과 설득 없이 쟁점 입법을 더불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 시켰다. 그 사례 중 하나가 ‘검수완박’이다. 야당 의견을 무시하고 다수당 마음대로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그것도 꼼수라는 편법을 동원하여 처리하지 않았는가!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무시하고 ‘답정너’(답은 어차피 정해져 있다)정책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였다. ‘무주택자는 선(善), 다주택자는 악(惡)’이란 흑백논리를 근거로 규제에 매몰되었다. 그 결과 집값과 전셋값이 치솟는 우를 범하지 않았는가? 이점은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 고유의 권한마저 쓸어 버렸다. 국민의 뜻이라는 명분으로 완성된 입법 독재는 결국 자신을 무너뜨리는 우까지 범하고 말았다. 그 결과가 시도지사 17곳 중 12곳서 국민의힘이 승리했고, 기초단체장도 145곳에서 승리하여 63곳의 승리에 그친 더불어민주당을 압도했다. 정책적 무능을 피하려면, 다양하게 듣고 유연하게 수정해야 된다는 것은 상식인데도 이 마저도 문재인 정부에서는 무시했다. 이것이야 말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과도 통하는 사례다. 내 편만 쓰면 고립된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다. 하지만 진영 논리에 빠져 내 편은 동지요, 네 편은 적으로 만들어 우리 사회를 극도의 갈등 속으로 몰아넣었지 않았는가? 이에 식상한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를 외면했다. 이점은 여야를 떠나 다 같이 곱씹어 보아야 할 점이다. 조직의 정상에 있는 분들이 스스로 '우매함의 정상'에서 내려올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정치계에서는 이걸 기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온 말이 ‘무식하면 용감하다’다. 이 명제는 이미 과학적 실험으로 입증되었다. 그것을 학술적으로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한다. 즉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지만,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이다. 사람은 얕은 지식을 가졌을 때 가장 확신이 높다고 한다. 책을 한 권밖에 읽지 않은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고 하지 않는가? 어리석음의 정상을 넘어 점차 지식이 쌓이게 되면, 자신의 지식이 보잘것없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이 때 자신감은 바닥을 치게 되고 이어서 절망의 계곡(Valley of Despair)에 빠진다. 이 절망의 계곡에서 처절한 숙고와 함께 더욱 경험하고 배우면 새로운 길을 간다. 그 경우 지식의 증가와 함께 점점 자신감이 상승하면서 깨우침의 오르막(slope of enlightenment)으로 나아간다. 깨우침의 오르막을 넘어서면 세상을 더 깊고 넓게 보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 현실은 그렇지 못 한 사람이 객기만을 가지고 정치를 하기에 천박하고 무식한 소리를 유식한 말 인양 떠든다. 그 말에 식상한 유권자는 점점 정치와 유리된 길을 간다. 이번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투표율이 저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선거는 끝났고 국민의힘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실패가 기다릴 뿐이다. 국민들은 정치인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바라고 있다. 그것이 이번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결과요, 투표율로 나타났다는 것을 여야 정치인들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쇄신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김성윤 칼럼] 초록의 계절 5월이 왔건만...
[김성윤 칼럼] 초록의 계절 5월이 왔건만...
▲ 김성윤 논설위원. [아산신문] 싱그러운 초록의 계절 5월이 왔다. 산천은 나날이 푸르게 더욱 푸르게 무르익어가고 있다. 오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꽃 중의 꽃 장미가 피는 계절은 햇볕도 따스하다. 장미를 많이도 사랑하고 노래했던 릴케는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 어느 날 그가 사랑했던 연인 니메트가 그를 찾아오자 자신이 손수 가꾼 장미를 그가 사랑했던 연인 니메트에게 꺾어주려다 그 만 장미 가시에 손가락을 찔리고 말았다. 백혈병을 앓고 있던 릴케는 가시에 찔린 상처를 통해 세균이 번져 1926년에 51세의 나이로 죽는다. 그는 성직자를 자신의 임종 침상 자리에 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영혼의 자유로운 항해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죽기 전 몇 달 동안 번역 일을 했는데 풀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가 그 작업이다. 발레리가 쓴 이 시집의 마지막 구절은 삶에 대한 의지의 노래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거대한 대기는 내 책을 펼쳤다 또 다시 닫는다. 가루가 된 파도는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단배들이 먹이를 찾아다니는 이 잠잠한 지붕을! 하지만 릴케는 죽었다. 눈먼 손으로 그의 삶을 <해변의 묘지> 마지막 구절처럼 만져 보았지만 그 것으로 마지막이 되었다. 그는 장미를 못 잊어 죽기 1년 전 12단어의 아름다운 시를 남겼고 그 시는 그의 유언대로 아래와 같은 묘비명이 되어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Rose, oh reiner Widerspr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dern." ) 묘비명은 그 사람의 인생을 압축하는 한마디 말이다. 소설 “적(赤)과흑(黑)”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의 묘비명은 “살았노라. 썼노라. 사랑했노라.”다. 평생을 작가로 살았던 그는 오직 쓰고, 사랑하다가 59세라는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가 묘비명이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두 가지 라네. 저 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 속의 도덕법이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중광 스님은 "괜히 왔다 간다"다. 헤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오("Pardon me for not getting up)" 다. 버나드 쇼는 정말 오래 버티면 (나이들면) 이런 일(죽을) 생길 줄 내가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의 묘비명이 "우물쭈물 살다 내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로 알려져 있다. 묘비명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 말의 뜻은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이다. 그런데 그걸 잊고 싸우고 다투며 잘났다고 아우성이다. 장미는 오랫동안 인간의 역사와 함께했다. 질투와 사랑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함께하면서 피고 졌다. 아마 그래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됐는지도 모른다. 오월의 푸르름이 장미의 아름다운 자태와 함께 더욱 짙어 가지만 우리의 정치판은 욕망에 눈이 멀어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다. 탐욕에 눈이 멀어 제 몸 닳아 사그라지는 것도 모르며 산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시를 키우고 단단하게 해야 되는 줄만 안다. 그 가시가 자신을 찌를 수 도 있는데도 한 치 앞을 못 본 채 날뛴다. 우리의 정치판에서는 내가 누군지 모르냐고 고함치며 조자룡의 헌 칼 쓰듯 힘자랑을 한다. 마치 영원한 강자처럼...
[아산광장] 백로와 같은 정치인을 기대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산광장] 백로와 같은 정치인을 기대하는 것이 가능할까?
▲ 임홍순 논설위원. [아산신문] 저수지 산책을 나서는데 백로가 정중동(靜中動)이다. 명경지수 물 위에서 집중하고 있는 백로를 보면서 세속의 욕심을 돌아본다. "까마귀 싸호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 마라. 셩낸 까마귀 흰빗츨 새올세라. 청강(淸江)에 죠히 씨슨 몸을 더러일가 하노라" 포은 정몽주 선생이 태종 이방원이 초대한 연회에 나가려 하자 어머니가 이를 경계하며 지었다고 하며 팔순의 노모께서 간밤의 꿈이 흉하다고 문밖까지 따라 나오면서 이 노래를 불러 공이 가는 것을 말렸다고 전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작자 미상이라고도 한다. 근묵자흑(近墨者黑), 즉 ‘검은 것을 가까이하다 보면 자신도 검게 물든다.’로 자주 사용하는 사자성어와 함께 쓰인다.. 반면 조선 개국공신 이직 시조도 있다. "가마귀 검다하고 白鷺(백로)야 웃지 마라, 것치 거믄들 속좃차 거믈소냐. 것 희고 속 거믄즘생은 네야 하노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백로는 ‘바름, 정의, 선(善)’으로 표현하며 까마귀는 ‘그름, 부정, 악’으로 흔히 표현한다. 그러나 겉이 하얀 백로는 속살이 검고 겉이 검은 까마귀는 속살이 백색이라 한다.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에 절대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윤석열 신정부 출범 준비, 국회 다수당의 검수완박, 정치권의 지방선거 전략공천, 네거티브 선거운동 등 나라 전체가 온통 시끄럽다. 그러기에 정치에 발 담그는 것을 진흙탕 싸움이라 하며 오죽하면 옛 선현들은 고고한 선비를 백로라 칭하며 까마귀 곁에 가지 말라고 경계하기도 했다. 정치인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에 입문하기만 하면 마음이 음흉한 겉과 속이 다른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이 변한다고 하여 표리부동(表裏不同)의 표본이라고 까지 했을까? 내로남불 유유상종 패거리 집단으로 변하여 민생보다 힘의 논리에 의한 아귀다툼의 전장터로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환멸을 느낀다. 순자 왕제(王制) 편에 재주복주(載舟覆舟)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수소이재주(水所以載舟) 역소이복주(亦所以覆舟)로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는 뜻이다. 물의 양면성을 뜻하는 것으로 물은 민심이고 배는 정치인들을 말한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들은 항상 민심인 물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 잘못 사용할 때는 큰 곤혹을 치를 수밖에 없다. 또한, 명심보감에 ‘유세막사진(有勢莫使盡) 세진원상봉(勢盡寃相逢)’이라고 나온다. “세력이 있다고 함부로 부리지 말라. 세력이 다하면 원통한 이와 서로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이 늘 가슴에 새겨두고 지표로 삼아야 할 말이다. 권력의 특성상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끼리만 어울리면서 이득을 나눠 먹지만 아무리 어둠속에서 작당을 할지라도 결국에는 백주에 다 드러나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게 비일비재(非一非再)한 세상이다. 늘 ‘바름, 정의, 선(善)’의 백로 같은 바른 마음과 행동만이 혼탁한 세상에서 고고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그름, 부정, 악’의 구렁텅이 속으로 자꾸 빠져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아산광장]임기말 알박기 인사가 고유권한인가 침해인가?
[아산광장]임기말 알박기 인사가 고유권한인가 침해인가?
▲ 임홍순 논설위원. [아산신문] 문재인 정부에서 임기말 알박기 인사 대상자가 59명이라고 하며 한국은행총재와 감사원 감사위원 임명을 두고 한동안 시끄러웠다. 당연히 현 정권은 임기만료 전이라 고유권한이라 하고 새로운 당선자 측에서는 향후 상당 기간 같이 일할 사람들이니 상호 협의해서 인사안을 마련하는게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국가조직은 대통령 사적 소유가 아닌 국민의 것이다. 따라서 떠나는 정권의 알박기 인사를 지양하고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한 미래지향적 인사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럼 지자체에서는 어떻게 하는가를 살펴본다. 지자체장 임기가 4년이다. 따라서 임기말이 되면 그동안 챙겨주고 싶은 보은 차원의 승진인사를 하고 싶어 한다. 개중에는 승진순위와 인원을 건너뛰는 객관성이 결여된 선심성 승진인사로 조직을 허탈감에 빠트린다. 따라서 행안부 등 중앙정부에서 인사지침을 지자체에 통보한다. 임기만료 6개월 전에는 5급 승진에 해당하는 승진리더과정 교육대상자 의결을 하지 않도록 지침을 내려 보낸다. 퇴임하기전 무더기 승진대상자를 의결하여 신임 지자체장이 취임후 인사를 풀어나가느라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았기에 이를 막고자 함이다. 지방공무원 인사제도 지침에 의하면 지방선거가 있는 해에는 퇴직 예정자를 고려해 미리 승진후보 대상자를 의결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 규정은 2017년 변경돼 2018년 지방선거 때부터 적용하고 있다. 임기가 만료되는 상당수의 광역·기초자치단체장들과 일부 시·도 교육감이 지침을 위반하여 5급(사무관) 승진 예정자를 미리 선정하는 식으로 인사 규정을 어긴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이는 정부가 인사 전횡 및 후임 자치단체장의 인사권 제약 방지 등을 위해 별도의 인사 지침을 통해 금지하고 있는 행위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이 같은 인사는 해당 공무원들로 하여금 줄세우기를 부추기는 일종의 보은행위로 선거법 위반 소지가 높고, 직위를 이용해 특정인에게 승진이라는 불법적 이득을 주며 대가를 챙기는 부패행위라는 지적도 왕왕 제기되었다. 이처럼 정부에서는 지자체에 대해 퇴임전 인사권한을 최소한으로 묶어두고 있음에도 중앙정부 자체에서는 고유권한이라며 끝까지 인사권을 행사하려고 하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며 모순이다. 필자도 공공기관 임원으로 있을 때 임기말 6개월 전부터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간부 및 직원들 결원이 있어 승진인사를 해야 함에도 후임 이사장이 자기와 손발을 맞출 사람을 승진시켜 조직의 효율성을 가일층 높이도록 배려를 했다. 대통령 정권교체시나 지자체장 임기말에는 승진이나 전보인사를 자제하고 부진업무는 꼼꼼이 챙겨 새로 취임하는 측에 부담을 조금도 주지 말아야 한다. 임기말 막바지 선심성 인사가 중요한게 아니라 업무 마무리가 더 중요한 것으로 정부나 지자체 공히 제사보다 잿밥에만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김성윤 칼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란다
[김성윤 칼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란다
▲ 김성윤 논설위원. [아산신문] 20대 대통령 선거는 247,077표 차라는 초박빙으로 끝났다. 이번 선거는 갈등과 적개심으로 얼룩진 선거였다. 이를 치유하라는 국민의 명령이 초박빙으로 나타났다. 이는 협치 와 통합 그리고 화합하라는 명령이요, 메시지다. 국민들은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19의 팬데믹(pandemic)으로 많은 고통과 실의 속에서 살아야 했다. 집값이 치솟고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중산층이 붕괴하면서 가난의 평준화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길을 가야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경제적 제재로 유가가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원자잿값이 오르고 환율마저 급등하고 있다. 이 같은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항로를 찾아보라고 대한민국호의 방향타를 윤석열 당선자에게 쥐여 주었다. 20대 대통령선거 결과에서 보았던 바와 같이 국민들은 노동정책 실패에 대한 분노, 공정과 정의의 실종에 대한 정권의 불신, 부동산 문제에 대한 안이한 대응, 상식이 통하지 않은 나라 등등을 바로잡기를 주문했다. 새 대통령은 이러한 주문을 최단 시간 내에 응답하여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 주어야 한다. 다시는 내로남불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것이요,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지 말라는 것이며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을 덜어 달라고 대한민국호의 새 선장으로 윤석열 당선자를 선택하였다. 노예들이 노를 젓던 로마 시대의 배에는 방향타가 없었다. 이 때문에 맞바람이 불면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 밀리곤 하였다. 하지만 15세기 후반 ‘방향타’가 발명되었다. 방향타를 잡은 선장이 배꼬리에 붙은 널빤지를 움직이는 것으로 큰 배도 쉽게 방향을 틀 수 있고 앞으로 계속 나아 갈 수 있었다. 이러한 배도 방향타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배가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 갈 수가 없다. 유능한 선장은 배꼬리에 달린 널빤지를 자유자재로 다루어 배가 목적지를 향하여 나아간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과 바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라의 구석진 곳의 미미한 것까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나라가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비전의 제시가 필요하다. 그것이 국민에게 주는 희망이요, 이상이며 꿈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해야 할 원대한 목표요, 커다란 사명감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분명한 길잡이가 필요하다. 그 길잡이가 비전이다. 대한민국호의 방향타를 잡고 5년간 운행할 대통령은 자만하지 말고 국가를 정상 국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비전이다. 비전이 없는 지도자는 마치 여행을 하면서 안내서를 지니지 않고 떠나는 여행객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훌륭한 비전을 가진 지도자라 할지라도 그것을 실현할 힘이나 방법이 없다면 그 비전은 허망한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힘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요, 방법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국민적 지지에서 온다. 국민적 지지를 받으려면 국론 통일이 필요하다. 협치가 필요하다. 국민이 분열되고 쪼개져 있다면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도 자기의 비전을 실현할 수가 없다. 지금 대한민국호는 이번 선거에서 보았듯이 거의 반반으로 여와 야로 갈라져 있다. 지역으로 갈라져 있고, 세대로 갈라져 있다. 이도 모자라 남녀가 갈라져 있고 노사가 갈라져 있다. 이를 통합하고 화합하라는 것이다. 다시는 국민이 국가를 걱정하지 않은 나라를 만들고 구축하라는 것이 새 대통령 당선인에게 방향타를 쥐어주었다. 뱀은 매년 허물을 벗는다. 허물을 벗지 못하면 비늘이 굳어 성장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 새 대통령은 대한민국호의 허물을 벗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되 자만하지 말고 초심을 잊지 말라는 것이 국민의 메시지지요, 새 대통령이 할 일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임홍순 칼럼] 포용과 화합 그리고 고산경행(高山景行)
[임홍순 칼럼] 포용과 화합 그리고 고산경행(高山景行)
▲ 임홍순 논설위원. [아산신문]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대통령선거도 끝났다.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이 확정된 윤석열 후보에게 심심한 축하를 드린다. 이제 선거로 인해 분열되었던 민심을 추슬러야 한다. 승자나 승자를 지지했던 분들은 더 겸허한 자세로 패자쪽의 마음을 보듬어 주어야 하고 낙선한분이나 그쪽을 지지했던 분들도 아픈마음을 딛고 다수의 선택을 받은분에게 축하를 해주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선거는 여야로 나뉘지만 다가올 지방선거는 지역별로 세분화되어 더욱 분열이 예상된다. 지방선거는 도지사, 교육감, 시장·군수·구청장, 광역의원, 기초의원별 각각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얽혀 더 혼란스러울 것이다. 먼저 당별로 한명을 뽑는 내부경선을 시작으로 각당의 후보자 지지세력들 또한 저마다의 승리를 위한 열띤 경합이 예상된다. 모르긴 해도 대선때 보다 더 심해질 것이기에 한동안 눈살을 찌뿌리는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며 후보자간 고소 고발과 운동원간 싸움도 더 심해질 것이기에 옆에서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한층 더 무겁게 할 것이다. 아무리 선의의 경쟁을 외쳐도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되면 오로지 승리만을 위한 치열하고 치졸한 전략만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와 역대 지방선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부터는 제발 뒤통수 때리거나 상대방 약점잡기 하지 말고 희망적인 정책대결이라는 멋진 정면승부의 선례를 남겨보자. 그래야 선거이후 포용과 화합의 큰 틀아래 지역내 패인 골 회복이 쉬울 수 있는 것이며 당선자와 낙선자간 서로 손잡고 안아주기에도 껄끄러움이 덜할 것이다. 280번 전투시 한번도 패하지 않고 전승기록을 세웠으며 고금을 통해 세계 최고의 리더로 회자되는 인물인 중국 춘추전국시대 관포지교의 인물인 제나라 재상 관중이 남긴 이야기에도 배움이 있다. 제나라 왕이 관중에게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라고 물으니 첫 번째로 혁신(革新)해야 합니다. 피부를 벗겨 새롭게 하듯 낡은 것을 바꿔 아주 새롭게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하루를 잘살려면 농사를 지어야 하고, 일년을 잘살려면 나무를 심어야 하며, 백년을 잘살려면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기원전 600년경 농업국가에서 획기적인 수공업을 장려시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했던 관중의 선견지명을 돌아보면서 오늘의 우리현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사람은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넉넉해야 영예(榮譽)와 치욕(恥辱)을 안다’ 즉, 국민들이 잘 살도록 경제를 활성화 시켜 삶의 질을 높여 주므로써 국민들에게 행복감을 주어야 한다. 새로 대통령에 뽑힌분이나 지방선거에 출마할 분들 모두 관중의 부국강병 인재육성 진언과 “높은산은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큰길은 사람이 따른다”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고산경행(高山景行)’이라는 문구를 가슴에 담으면 좋겠다. 나라나 지역의 지도자들 모두는 국민들이 배부르고 맘 편하게 살도록 하여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존경받으며 고산경행(高山景行) 이라는 이런 칭찬의 소리가 늘상 따라다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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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삶의 여유 공간
‘힐링’의 시대라고 하는 요즈음,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시민강좌가 붐을 이루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고 있지만 지자체마다 평생교육원이나 주민자치센터에 인문교양 과목을 개설하고 있고 언론사 및 백화점 문화센터의 인문강좌도 관심이 뜨겁다. 문학, 철학, 역사를 총칭하는 인문학은 인간에 관한 학(學)이다. 따라서 인간다운 삶을 꾸려가는 데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동안 우리는 인문학이 어렵고 학자들에게만 제한된 학문이라고 여기며 가까이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정신적 만족보다는 물질적 안락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사회풍토에서 인문학에 대한 흥미는 줄 수밖에 없었다. 인문학은 행동과 사유 그리고 역사와 사회현상을 종합적으로 파악, 성찰함으로써 삶에 관한 시야를 넓힌다. 인문학은 인간 본성을 꿰뚫는 통찰력을 담고 있으며, 그 통찰력으로 삶과 세상의 이치를 궁구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오래 지탱해 온 질서와 틀이 해체되고 사회 전체의 생태계가 급속도로 변하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새로운 방향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답답해하는 이들에게 인문학은 나침반이 되어준다. 또한, 인문학은 사람 중심의 지속가능한 사회 만들기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발전에 필요한 도구적 가치를 지닌다. 말하자면, 인문학적 사유양식이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행복도를 높인다. 인간다운 삶의 실현은 물질적 만족 외에 지적, 윤리적, 예술적 등 정신적인 가치가 충족되었을 때에야 가능하다. 이러한 가치를 우리는 인문적이라고 부른다. 물질지향적 경쟁이 강조되면서 우리들 심성은 날로 삭막해져 가고, 편의성과 속도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우리들 감성은 갈수록 메말라가고 있다. 이는 인문정신의 빈곤에서 기인한다. 최근 들어 인문학에 대한 일반 대중의 열기가 높고 문화센터, 종교시설 등에서 인문교양강좌가 늘어나는 추세다. 속도와 경쟁의 시대에 인간적 숨결이 느껴진다. 이런 현상은 팍팍한 삶 속에서 스스로 성찰하고 위안을 얻는 힐링(치유)문화가 사회 트랜드로 부각되면서 나타났다. 내면의 세계를 키워주는 인문학은 인간의 마음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강한 힘이 있다. 첨단지식이 쏟아지고 현대 사회가 복잡다단해질수록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전과 역사에 대한 통찰을 담은 인문학의 갈증이 커질 것이다. ‘미래는 과거로부터’ 그리고 ‘외부가 아닌 내부로부터 온다’고 하듯. 귀농·귀촌의 증가 등 빠르게 변화하는 농촌사회에도 인문학적 성찰과 지혜를 모으는, 즉 빈 마음을 채워주고 바쁜 일상의 속도를 줄여주는 삶의 여유 공간이 절실하다. 단순히 자연환경을 중심으로 공원을 조성하거나 체육시설을 확충하는 데 머물게 아니라 더 나아가 도서관, 문예회관 등 지식공간을 활성화하고 지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예술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 많은 돈을 들여 문화예술회관을 화려하게 짓는 것으로 지역문화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선심성 행사나 연예·방송인 초청 같은 떠들썩한 이벤트는 지양하고 향토문화유산과 연계한 인문교양콘텐츠와 시대흐름을 읽는 지식정보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내실 있게 운영하는, 이것이 지방자치의 참모습이다. 지역 문화공간은 주민들이 자기계발 및 사회적 역량을 높이는데 기여하므로 대단히 중요하다. 삶의 충전소로서 뿐만 아니라 정보교류의 장(場)으로서 지역사회의 공동체 생활을 풍성하게 해준다. 따라서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과 평생 교육적 차원에서 문화기반을 구축하고 활성화해야 한다.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오늘날은, 누구나 더 배워야 하고 더 알아야 하는 평생학습의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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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와 성(性)을 생각 한다
[아산신문]성(性)이란? 본래 사람의 분류 개념으로 남녀의 육체적인 관계와 사람들이 관여하는 행위 그 자체를 뜻하며 남녀 간의 생물학적 또는 해부학적 차이를 의미하는데 사전적으로는 · 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본성이나 본바탕과 · 남성과 여성, 수컷과 암컷의 구별. 또는 남성이나 여성의 육체적 특징이며 · 또는 남녀의 육체적 관계. 또는 그에 관련된 일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인간의 의식에 고착되었던 성(性)은 현대에 들어 1995년 북경에서 개최된 제4차 여성대회 GO(정부기구) 회의를 통해 sex와 gender로 구분하였다. 즉, 생물학적 성(sex)은 신체적인 차이인 신체 구조, 유전적 차이에 따른 성을 의미하며 여자와 남자의 해부학적 특성을 바탕으로 성별이 구분되고, 이러한 남녀의 성적 특성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불변의 속성으로 이해되었으나 사회적 성(gender)은 생물학적인 성(sex)과 구분되는 개념으로 남녀의 대등한 관계를 내포하며 평등에 있어서도 모든 사회적인 동등함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과거, 남자는 강인해야 하고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인식이 삶의 전 과정에서 작용되어 남성성(masculinity)은 씩씩하고 용감함, 공격적이며 적극적, 결단력과 판단력 이성적이어야 하며 여성성(femininity)은 섬세함과 부드러움, 방어적이며 수동적, 소극적, 따뜻함과 보살핌, 감성적 등으로 인식하였으나, 현재 사회적 성(gender)은 사회의 문화 속에서 남녀에게 적절하다고 간주되는 사회적 특성과 행동 기대에 따라 구조화된 성으로 이러한 특성은 사회화 과정, 특히 성장과정에서 학습에 의해 훈련된 남녀의 사회· 심리·문화적 차이로써 생물학적 차이와 별개 요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사회적 성의 학습은 성장과정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의 긍정적인 면 모두를 훈련될 필요가 있는데 특히, 남성성의 상징인 정의의 윤리와 여성성인 보살핌의 윤리가 서로 상호 보완적일 때 그 빛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즉, 에릭 에릭슨은 자기 발달이론에서 “인간은 단계마다 위기(developmental crisis)에 직면하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성장한다”라고 했다. 따라서 생물학적 여성이 사회화 과정에서 사회적 성이 훈련되었다면 어떻게 봐야 하는가? 현대사회는 성 차이보다 큰 개인 차가 존재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남녀의 차이보다도 남녀 개인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고 있고 개인 간 개성의 차이로 접근하는 다양성의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금세기 최고의 세계적인 석학이자이자 미래학자인 존 나이스비트 (Jhon Naisbitt)는 21세기의 트렌드를 감성(Feeling), 가상(Fiction), 여성(Female) 등 3F로 정의했다. 즉, 이성적이기보다 포근한 자극과 무한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주도할 부드러운 리더십이 필요 하다고 본 것이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성 평등 사회의 의미 있는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 우리는 한 단계 높은 발전을 위해 과거 성 인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털어버리는 사고와 인식변화의 혁명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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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하나이나 귀가 둘인 이유?
[아산신문]당태종(太宗)으로 일컫는 이세민(李世民)은 수나라(581∼619)말 혼란기에 아버지 이연(李淵)과 군사를 일으켜 관중(關中)을 장악한다. 이듬해 수양제에 이어 즉위한 ‘공제’를 폐하고 이연을 도와 당(618∼907) 나라를 창업했다. 626년 당 고조 이연에 이어 제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이세민은 형과 동생을 처참히 살해했지만 황제가 되고서는 문을 숭상하고 언로를 개방하여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했다. 후대에 당 태종의 시대(서기 627∼649)를 ‘정관지치(貞觀之治)’라 하여 중국 역사에서 추앙하는 황금기로 평가받는 데 있어 위징(魏徵)이 큰 공헌을 했다. 위징은 수나라 말기 귀순해오자 이연은 장차 대를 이을 장자 건성에게 위징을 주어 수하가 되게 했다. 그 시기 세민이 수나라 잔당을 제압하며 큰 공을 세우자 후일을 염려한 위징은 황태자 건성에게 동생 세민의 독살토록 사주했지만 실패하고 도리어 형 건성이 세민의 손에 현무문의 변을 당한다. 당나라 2대 태종이 된 세민은 자신을 죽이려했던 위징이 그 당시 건성에게 충성을 다하며 주군의 안위를 위해 멀리 내다보는 안목과 사람됨을 높이 평가했으며 대신들의 만류에도 간의대부로 임명하고 나중에는 재상으로 중용했다. 자치통감(資治通鑒)의 당 태종 2년 조(628년)에 나오는 군주의 나랏일 처리와 관련하여 태종과 간의대부 위징이 주고받은 대화이다. 태종이 묻기를 “군주가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한 일을 그르치게 처리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위징이 대답하기를 “여러 부류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면 자연스럽게 정확한 결론을 얻을 수 있지만 한쪽 말만 듣고 그것을 믿는다면 일을 그르치게 될 것입니다.” 이어서 역사적인 교훈을 예로 들면서, 군주의 독선적인 판단이 얼마나 큰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는지 설명했다. 이를 우리의 현실에 대입해보면 조직의 리더는 인재를 쓰는 데 있어 사사로움을 버려야 하며 중요한 일을 할 때에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고 판단해야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되어 일을 그르칠 개연성이 적다는 것이다. 물론, 촌각을 다투는 전장에서의 지휘관이야말로 순간적으로 종합적인 판단과 결심, 조치해야 하지만 조직에서 사람을 쓰는 일에는 편견을 버리고 중요한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중지를 모아야 한다. 특히, 우리 주위를 보면 부모 잘 만난 덕에 가업을 물려받자 막무가내로 전권을 휘두르는 자들을 본다. 자고로 능력이 부족하면 인격적으로라도 성숙되어야 하는데 조직 관리의 경험이 부족하여 무능하고 어리석은데 갑질까지 한다면 살아남으려고 아첨하는 자들만 생겨 날 것이다. 이들은 듣기 좋은 말로 리더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쓴 소리 하는 사람에게는 시기하고 모함하여 스스로 입을 닫고 떠나도록 할 것이다. 따라서 리더는 듣기 좋은 말로 아첨하는 자들을 멀리하고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쓴 소리까지 듣고 난 후 중지를 모아서 결심하고 시행해야 할 것이다. 즉, 겸청즉명 편신즉암(兼聽則明 偏信則暗) 다양한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지고 한쪽 의견만 들으면 아둔해진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어쩌면 입은 하나이고 귀가 둘인 이유는 한마디 말하기에 앞서, 두 마디 들으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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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 무엇이 문제인가?
[아산신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으로 시끄럽다. 조선일보 최보식이 만난 사람에서 배보윤 변호사는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에 의한 개헌안은 국회에서 통과 된다고 해도 100%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 하였다. 그는 판사 출신 변호사로 1991년 제20기 사법연수원 수료 후 공채 1기로 헌법재판소 연구관이 된 후 헌재에서 26년 동안 재직하였다. 그는 국내 최고의 헌법이론의 전문가이자 실무를 아는 전문가이다. 그가 헌재에서 재직하는 동안 5·18 특별법, 행정수도 이전, 호주제, 한·일 어업 협정, 대통령 탄핵, 통진당 해산 등 주요 재판이 있었으며 그 재판에 참여도 하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헌재 공보관 겸 총괄연구부장을 맡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 같은 전문가가 지적한 문제점은 개헌안의 어떤 조항이며 그 내용은 무엇인지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을 하였다. 개헌안의 절차적 문제 그의 지적에 의하면 "... '대통령 안'이라고 해서 청와대에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다. 헌법은 대통령 비서 업무가 아니다. 대통령 안은 국가를 대표하는 행정부에서 만들고 반드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개헌안 설명도 민정수석이 아니라 법무장관의 소관이다." 헌법이 아닌 일반 법률안을 만들 때도 ".. 차관회의, 법제처 검토,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개헌안에 이런 법적 절차가 무시되었다. 만에 하나 통과 된다고 해도 헌재에 소원하면 100% 위헌 판결이 난다." .."정말 상식 밖이다. 의견 수렴과 조율도 전혀 거치지 않았다. 공청회 한번 열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에 제출된 개헌안은 여러 조문에서 문제점이 보인다고 하였다. 그중에서도 헌법 전문에 나와 있던 ".. '4·19 민주이념'을 '4·19 혁명'으로 바꾸어 놓았다. 4·19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사적 논란이 진행 중이다." 즉 혁명인가 의거인가? 그밖에 여러 사고에 대한 정리가 끝난 게 아닌데도 혁명이란 말을 삽입하였다, 그 밖에 전문에 추가된 내용 중 숙고해 보아야 할 내용으로는 자치와 분권을 강화한 내용이 신설되었다. 문제는 " .. 제1조 3항에서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이는 법률적 용어가 아니다." 그 조항에 관한 내용인 즉 "국민주권주의를 담은 제1조는 매우 명확하고 핵심적인 이념 조항인데, '지향한다.'는 단어는 내용과 범위 한계가 불분명하다. '지방분권국가'는 현실에서는 '연방국가'를 의미한다. 만약 이를 염두에 뒀다면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입법·사법·행정을 나눠야 한다." 그런데 개정안에는 '국회 입법권'을 명시했으니, 지금과 같은 단일 국가 체제를 말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다른 조항에서는 '지방정부의 자치권은 주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적시해 놓았다. 연방주의처럼 '두 개의 주권을' 규정해 놓은 것이다. 이런 혼란과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공론화를 충분히 거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토지의 합리적 사용을 위한 제한과 공무원 노동 3권 그밖에 논란이 되고 있는 분야는 토지 문제이다. 개정안의 '토지 공개념'도 주요 쟁점 중의 하나이다. 그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부분이 '국가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토지의 공공성문제는 그런대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 사용'의 기준이 애매하다. 자유 시장경제에서 합리적 사용 여부는 개인이 결정할 몫이다. 만약 합리적 여부를 국가가 결정하고 지정 한다면 명백한 위헌이라고 지적 하였다. 개정안에는 '근로자'를 '노동자'로 용어를 바꾼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문제라고 하였다. 용어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공무원 노동 3권을 기본적으로 인정'하는 조항이다. 이 중 단결권 조항에는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구절을 삭제해 정치 파업도 가능하게 해놓았다." 이에 대하여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와 다르다. 이 때문에 신분 보장과 연금을 주고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는 것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기본권 침해를 받았다'며 헌법소원을 내자, 헌재에서 '공무원은 공권력 주체이지 대상자가 아니다.'라며 각하한 적이 있다. 개헌안은 이런 현행 헌법 체계에 어긋나는 것이다." 라고 지적 하였다. "헌법은 수호 의지가 중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이번 개정안처럼 헌법 내용을 많이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대에 너무 뒤처져 실효성 없는 조항만 최소한 개정하고, 대부분 기존 헌법의 해석으로 해결한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현행 헌법의 대폭적인 개정을 하였다. 더구나 국회는 이 개정안을 수정할 수 없으며 찬반 투표만 할 수 있다. 이래서 나 같은 비 전문가가 보아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보인다. 따라서 이왕지사 바꾸어야 될 헌법이라면 서두를 것이 아니라 차분히 백년 후를 내다볼 수 있는 헌법으로 재탄생 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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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잘못은 한번으로 족하다
[아산신문] 달무리가 생기면 바람이 불고 주춧돌이 축축하면 비가 내린다는 말이 있다. 이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징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 예로 큰 병은 반드시 잔병을 통해 예고하듯이 세상의 모든 일은 갑자기 일어나는 일은 없다. 따라서 작은 징조를 분석하여 다가올 위기에 대응 한다면 그만큼 위험은 줄어들 것이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징후를 보고 다음에 일어나는 일을 미리 대비한다. 작은 징후의 변화에 대비하면 위기는 위대한 기회가 되나 변화에 대비하지 못하면 위기는 위험이고 몰락을 가져온다. 1930년대 초 미국의 한 보험회사의 관리자였던 하인리히(Heinrich)는 노동재해 5천 건을 분석해본 결과 ‘1대 29대 300’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즉 한 번의 중상 이상의 재해가 발생 하려면 그 이전에 29번의 경상 재해와 300번의 경미한 재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발견 하였다. 이를 그의 이름을 따 하인리히 법칙이라 한다. 이처럼 예고 없는 재해는 없다. 이 법칙은 자연 재해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이나 정치계에도 적용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나라가 시끄러울 분만 아니라 국론이 분열되고 패가 갈리어 그 어느 때 보다도 통합이 강조 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언론 또는 학계가 조금만 더 주위를 기울였다면 지금과 같은 혼란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윤회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단핵으로 가는 징조요 조짐이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그 징조를 바로 잡지 못하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불통이란 걸 자기만 모를 뿐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였다. 그 결과는 불행한 대통령이요,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란 걸 의심하게 하는 사건으로 비화 되었다. 여기서 끝난게 아니라 나라의 혼란과 국론 분열을 가져왔다. 그리고 우리는 후회를 되풀이 하고 있다. 강태공은 도살업도 해보았고 주막집도 운영해 보았다. 하지만 매번 실패하여 끼니 걱정을 해야 될 정도로 가난하였다. 그러면서도 천하를 낚겠다고 낚시질로 소일하자 이를 더 이상 참지 못한 부인은 강태공을 쫓아내고 만다. 아내에게 버림받은 무능한 남편이 되어 떠돌다 나이 70이 넘어서 주나라의 문왕에게 발탁된다.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어 결국 제나라의 왕이 된다. 남편이 성공을 하자 옛날 부인이 나타나 함께 살게 해달라고 애원을 한다. 이때 강태공은 그릇의 물을 엎지르고는 다시 주워 담아 보라고 한다. 그래서 '엎지른 물'의 고사가 생겨났다. 이 세상에는 이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문제는 뒤늦게 후회해야 소용없는 일이다. 후회하는 일을 없게 하려면 미리 자숙하고 자제하며 예방하는 수밖에 없다. 송나라 때의 구래공이 쓴 '6가지 후회 될 일'을 경계하는 글 육회명은 이런 뜻에서 우리 사회의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관리가 사리(私利)를 탐하고 정도를 굽히면 자리를 잃을 때 후회한다. 둘째 부유했을 때 검약하지 않으면 가난해졌을 때 후회한다. 셋째 기술이나 재주를 젊었을 때 배우지 않으면 때 지나서 후회한다. 네째 일을 보고 배우지 않으면 필요할 때 후회한다. 다섯째 술 취해서 함부로 말하면 깨어나서 후회한다. 여섯째 건강할 때 휴식하지 않으면 병들었을 때 후회한다. 옛 성현의 이야기지만 귀담아 새겨야 오늘과 같은 혼란과 분열을 예방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사는 긴 것 같지만 너무도 짧다. 영국의 유명 극작가 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묘비명은 ‘내가 우물쭈물하다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로 유명하다. 앞을 내다 볼 줄 모르는 사람은 목이 말라야 우물을 판다고 했다. 후회 한다는 것은 스스로 가슴을 멍들게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이제 우리는 후회 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5월 9일 보궐 선거에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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